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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3] 내 사랑 지니와 팔방미인 아줌마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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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3-31 17:31 조회6,9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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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내 사랑 지니와 팔방미인 아줌마 사이

힐빙스토리

 

 

   “내 사랑 지니”를 아세요?
 
 
 아신다면 당신은 아마도 나이를 꽤 먹은 분일 겁니다.
1965년에 시작된 이 미국드라마는 우리나라에도 방영이 되었어요. 남자주인공인 우주비행사가 어느 행성에서 이상하게 생긴 호리병을 주운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호리병 속에는 어여쁜 요술쟁이 지니가 살고 있었어요. 부를 때마다 분홍빛 연기와 함께 나타나서 어떤 문제든지 요술로 척척 해결해주지요. 날씬하고 예쁘고 말도 잘 들어요. 심심할 때는 나와서 같이 놀아주다가 필요 없을 때는 호리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그녀를 뭇 남성들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내 남편도 막연히 그런 지니를 꿈꾸었던 것 같아요. 저는 요술도 못 부리고 그녀처럼 예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필요 없을 때 호리병 속으로 사라질 줄도 몰라요. 시간이 지날수록 늙어가고 유지비용도 많이 들고 잔소리까지 할 줄 아는 그냥 여자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런 나를 좋아한대서 결혼을 했더니만 이 남자의 착각이 중증이었던가 봐요. 꿈에 그리던 지니가 아니래서 그이도 괴로웠겠지만 제 속상함은 어땠겠어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렸던 철부지 공주님은 너무도 슬펐어요. 누군가의 꽃이 되어 특별하게 살아갈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세상에 흔하디흔한 아줌마로만 덜렁 전락해버린 꼴이라니요. 우리나라에서 결혼과 동시에 받는 가장 억울한 호칭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아줌마’라는 말일 거예요. 그만큼 그 이름에 얹혀진 이미지가 우리에게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는 이야기겠지요.
 
당하지 않는 사람은 몰라요.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이 들어 결혼했다는 이유로 아무 때나 ‘아줌마’라고 함부로 불릴 때의 참담한 심정을요. 소설책에 많이 나오지요. 억척스럽고 무신경하고 남부끄러운 줄 모르는 모습으로 자기 가족만 챙기는 아줌마들 말예요.
 
세월이 변하면서 그런 류의 이미지는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고약하게 진화되고 있어요. 게으르고 무식하고 뻔뻔하고 치사한데다가 이제는 놀면서 행세까지 하는 부류로 손가락질 받는 기분.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걸까요? 아무튼 그 모든 게 함축적으로 머릿속에 연상되어 공연히 마음이 오그라붙는 거예요.
 
그럼에도 결혼하면 전업주부로만 살겠다고 결심했던 저는 어쩔 수 없이 그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했어요. 달리 부를 멋진 직함은 이미 개나 줘버렸으니까요. 우리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평생 살림만 하면서 늙는 자기 엄마를 보고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했던 것처럼 저 또한 직장생활로 늘 바빴던 엄마를 보며 나만은 우리 아이들에게 ‘집에 있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첫 단추를 호기롭게 끼우고 나니 외로운 아줌마의 한판 승부가 창창하게 열린 거예요.
 
이왕 이렇게 된 것, 아줌마의 이미지를 내 스스로 변화시켜 위상을 높이면 되겠지 싶었습니다.  헌데 그게 아니예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건 없어본 사람들만의 이야기예요. 남편은 평생 가정주부로만 사신 어머니가 키운 아들이고, 우리 아이들은 날 때부터 자기 엄마가 집에 있었는데 무슨 결핍감이 있겠어요. 가끔 엄마가 없을 때 해방감이나 느끼는 수준인 거지요.
 
내 존재를 아무도 감사해주지 않는데 자기 혼자서만 감탄하는 우스꽝스러운 자화자찬 원맨쇼가 시작되었어요. 날마다 “이건 나만 되는 겨~쓕쓕! 니들은 행복한 줄이나 알어~”의 일인 시위가 집요하게 우리집을 무대로 펼쳐졌지요.
 
 
  
저는 본래부터 소꿉장난이 취미였느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요런조런 집안일에 두루 능통한 처자예요. 일 많은 종갓집에서 태어나 가정 선생님이었던 엄마의 살림 교육을 많이 받고 자라서일 거예요. 손재주 좋고 눈썰미 좋고 감각 뛰어난 전업주부니 애들 교육만 잘 시키면 ‘신사임당’ 후보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서 광분하기 시작했어요.
 
존재감을 키우려고 팔방미인 강박증이 생겨버린 거지요.
요리도 폼 나게 뿅뿅, 집안 구석구석도 반짝반짝, 아이들 공부도 똘똘, 인간관계 원만, 가계관리 알뜰, 그리고 또 그리고. 해도 해도 끝이 없더라구요. 게다가 결혼한 여자에게는 온 세상이 갑자기 시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웬 놈의 훈수들은 그리도 끝이 없는지 원.
 
저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줄 알았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입니까. 게다가 가족들 모두 자기 일이 너무 바쁘고 피곤하대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세상이 그렇게 자기네를 볶아친대요. 집에 돌아오면 쉬고만 싶대요. 그러니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주면 좋겠대요.
 
가정주부의 역할이라는 게 옛날부터 그런 거래요.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힘이 쎄대나 뭐라나. 이런 연유로 결혼해서 내 사랑 지니가 될 수 없었던 저는 어느덧 버스보다 빨리 뛰는 대한민국 아줌마가 되어갔지요.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말예요.
 
너~어~무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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