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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4] 돈 버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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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4-14 20:36 조회5,6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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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돈 버는 기쁨

힐빙스토리

 

 

  어제는 오랜만에 같은 직장에 다녔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시댁과 친정은 물론 자기 집안의 관제탑 노릇으로 바쁜 중년의 여인들입니다. 대화 내용도 다채롭습니다. 남편의 대머리 특효약에서부터 어른들의 관절 수술이나 치매 관리 요령, 아이들의 교육 대책과 알뜰 쇼핑 기술까지 맥락 없는 생활형 수다가 끝도 없어요. 이렇게 삶, 그 자체의 맨얼굴을 서로 고민하며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만큼의 세월을 같이 나이 들며 느끼게 된 동질감 때문이겠지요.

 

  그들과의 인연은 대학 졸업 후 들어갔던 첫 직장에서부터예요.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형 출판사 공채 1기로 선발된 우리는 각자의 희망에 한껏 부풀어 있던 때였지요. 앞으로 빠닥빠닥한 커리어우먼이 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사라는 곳에 다녀보니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어요. 아침 일찍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는 출근길도 고생이었지만 무엇보다 꼴통 직장 상사들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기획실 회의 있을 때마다 '커피 좀 타오너라, 김양아~ 이양아~ '하며 신입 여직원을 부려먹는 통에 다들 신경을 곤두세웠어요. 같은 공채 직원이라도 남자는 ‘OOO씨’라 부르면서 은근히 남녀차별을 즐기는 마초들의 심보가 어찌나 얄밉던지요. 동료의 심사가 편하질 못하니 그 불똥이 괜히 만만한 자기들에게 튈까봐 입사동기 남직원들만 전전긍긍했답니다.

 

  그런 사무실 속에 앉아 있노라면 회사 빌딩 자체가 거대한 냉장고고 우리는 그 속에 갇힌 생선 같았어요. 한겨울 컴컴할 때 나와서 별을 보며 집으로 퇴근하는 날엔 가끔 울고 싶더라구요. 그렇다고 직장 생활이 영 재미없진 않았어요. 말 통하는 동료도 있고, 편집실 분위기도 화기애애했거든요. 하지만 그 놈의 '치사한 돈' 때문에 목줄을 매고 갇혀있다는 기분 때문에 너무 억울했던 거예요. 형이상학이 형이하학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문화에서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가르치던 시절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회사를 다녀보니 자신이 그런 돈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저당 잡힌 것 같아 더욱 비참했던 거 같아요.

 

  그렇게 한 달이 흐른 뒤, 내 손에 첫 월급을 받아들었을 때 그 기분이 참으로 묘했어요. 그 돈은 여태껏 부모한테 얻어 쓰던 그런 돈이 아니었어요. 내가 직접 남에게 속박 받으며 일해서 번 돈, 오롯한 노동의 대가였지요. 갑자기 그 돈의 주인이 된 마음이 어찌나 떳떳하던지요. 누구에게 돈을 쓸 일이 생기면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 돈은 다시 말하면 내가 너를 위해서 일주일을 일했다는 뜻이란다. 에헴~'

 

 누가 돈을 더럽다고 했던가요. 그 돈은 반짝반짝 빛났고 의연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억울하고 찌질한 내 일상을 달래주는 아주아주 달콤한 위로였던 거지요.

 

 

 

 

 

 

 

  전업주부가 되어서도 한동안은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때마다 갈등을 했어요. 돈을 벌고 싶어서요. 막상 결혼을 하고 어른 노릇을 하려다보니 집안에도 백수가 과로사할 만큼 숨은 일들이 새록새록 나오더군요. 딱히 직장 상사가 아니래도 미묘한 인간관계의 괴로움은 어디에나 있었구요. 사실 계속 놀기만 할 수 있더라도 그래요. 노동 사이에 끼이지 않은 휴식은 휴식이 아니라 고문에 가까운 일이잖아요.

 

  매뉴얼도 없고 한계도 불분명한 가정 일들은 딱히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선지 열심히 해도 도통 자신감이란 게 생기질 않더군요. 내가 지금 잘사는 건지 헛사는 건지, 밥이나 축내고 있는 빈대인지 아닌지, 남들이 대가를 지불할 만한 유익한 사람인지 아닌지 늘 허전했던 거예요. 차라리 얼마간 돈이라도 벌면 그만큼은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생길 텐데요. 월급이 적으면 '경력'이라도 쌓일 테고, 시간이 지나면 '직급'이라도 올라갈 텐데 죽어라고 살아봐야 '놀고먹는다.'는 소리 밖에 들을 일이 없는 아줌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렸어요. '집에서 된장찌개 끓여놓고 기다리는 마누라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거나 ‘잡아놓은 고기에 누가 밥을 주냐’라는 세상의 말에도 쉽게 자존심이 상해 성깔이 돋아나곤 했지요.

 

  같이 입사했던 그녀들도 결혼 이후에는 직장을 옮기거나 그만두기도 했지만 첫 정이어서 그랬는지 종종 안부를 묻고 가끔씩 만나게 되더라구요. 그 시절의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별별 일들이 살면서 자꾸 생겼어요. 같이 고민하고 분개하거나 격려하면서 조금씩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갔지요. 이제는 '김양~ 커피 좀 타와라~~'해도 능청스럽게 웃으며 맛나게 타다줄 거고, 꿀꿀한 날이면 직원들에게 책상 걸레질로 깜짝 이벤트를 해줄 수도 있는 경지에까지 오른 거예요. 이제 와서 생각하면 겨우 그까짓 걸로 핏대를 올렸나싶어서 계면쩍기까지 한 걸요.

 

  그런데도 나이든 아줌마는 취직하기 어렵데요. 마흔이 넘은 안경 낀 여자는 마트에 계산원으로도 채용되기 어렵다고 온 식구가 약을 올릴 때는 진짜로 막 우울해지더군요. 하긴 말이 그렇단 거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일들이 이미 한 아름 나에게 맡겨진 걸요. 이 역할과 일들을 걷어내고 쉽게 나갈만한 형편도 아직은 아니에요. 이왕 누릴 수 있는 것에, 가꿀 수 있는 것에 애정을 갖자고 마음을 돌려먹은 지도 오래되었어요.

 

  하지만 돈 버는 젊은 친구들이 힘든 사정으로 괴로워할 때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더군요. 그대들이 내팽개치고 싶어 하는 그런 일상이 어쩌면 누군가가 평생을 그리워하는 '댓가'가 있는 개운한 삶이라고요. 태풍이 와서 인생이 방향을 잃고 헤맬 때마다 이럴 때 돈이라도 벌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 적 참 많아요. 내 가치를 바람에 날려버리지 않게 붙드는 닻이라도 되어 줄 수 있을 테니 말예요. 가끔은 형이하학이 형이상학보다 훨씬 쌈빡한 힘을 갖습디다. 이런 얘기 넘 ‘꼰대적’인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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