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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5] 수리수리 마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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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5-07 10:26 조회5,5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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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수리수리 마수리

힐빙스토리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하다 보면 갑자기 마녀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해요. 동화책에 많이 나오잖아요. 매부리코에 모자가 달린 새까만 가운을 걸치고 거위 간 반쪽, 악어 눈물 반 스푼, 거북이 발톱 두 개 등등을 넣고 끓이며 요상한 주문을 외우는 그런 마녀 말이에요. 시장을 보느라 여러 가지 물건과 가격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던 날은 종종 그런 증상이 심해져서 밥할 맛도 안 나요.

 

  달걀 하나, 콩나물 하나에도 무공해니 저농약이니 유기농 인증이니 어쩜 그리도 가지각색인가요. 값은 또 왜 그렇게 천차만별인지요. 매끈한 호박이나 잘생긴 무를 집어 들다가 농약이나 촉진제를 많이 맞은 야채인가 싶어서 주춤해요. 껍질이 까칠하며 알이 굵은 달걀이 좋은 달걀 이래더니 계란 흰자에 탄력을 주고 노른자를 진하게 만드는 약이 있대서 찜찜해요. 톱밥 안에서 버둥거리는 싱싱한 게는 빨리 죽지 않도록 마이신 같은 약을 살포하기도 한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지갑을 열 때마다 어떤 먹거리가 몸에 좋은 건지를 몰라서 머리가 다 아파요. 가계 걱정 때문에 좋다는 걸 놔두고 값싼 걸 집어 들 때는 처량해지기까지 하지요.

 

  참기름의 이름 앞에 '순'이라는 글자를 붙인 건 필시 다른 참기름 장수였을 거예요. 그 이전에야 참기름이라니까 다들 그런 줄 알았잖아요. ‘순’참기름이 나오면서부터 이전 참기름에 약간 의심이 생긴 거지요. '방부제 안 들었음'이라는 광고를 보고 다른 상품에는 ‘방부제가 들었음’을 아는 것처럼, '발색제 안 들었음'을 보고 나서야 소시지의 분홍빛이 자연색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잖아요. 새로운 상품이 얼마나 더 좋은지 설명하느라 서로들 경쟁하는 동안 순진했던 엄마들은 너무도 많은 것을 저절로 알게 되어버렸어요.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이런 의심증은 더욱 심각해졌어요.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싸고 비실비실한 무공해 야채나 좋은 상표를 사야 할 것 같아서 애를 많이 끓였지요. ‘아이한테 배부르게만 먹이면 뭐 하냐? 그만큼 독도 많이 먹이는 거다. 그러니 배곯지 않을 정도로 먹이는 게 더 낫다.'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런 걱정을 한가득 안고 식탁을 차리는 제 마음이 편할 리가 있나요. 슈퍼에서 산 쌀로 밥을 안치고, 생선을 구우면서도 방사능 오염을 염려합니다. 된장찌개 한 그릇을 끓이는데도 걱정이 한 사발이에요. 사온 된장 한 숟가락에, 말 많은 수돗물을 한 컵 붓고, 농약 먹고 피둥피둥하게 자란 야채를 숭숭 썰어, 유전자 콩 두부까지 넣은 참이잖아요. 어쩔 수 없이 '수리수리 마수리'하고 주문을 외는 마녀가 생각날 밖에요.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참 많은 것들과 싸워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엔 마을로 내려오는 호랑이나 들짐승과 싸우더니 나중엔 쥐나 벌레가 골치였잖아요. 요샌 집 먼지 진드기나 유해 성분과 씨름을 하는 중이에요. 지구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들이 바이러스처럼 느껴질 텐데, 유독 사람들만 무공해 상태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 같아서 슬슬 계면쩍어지기까지 해요.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나온 추억의 옛 장면을 보고 갑자기 웃음이 터졌어요. 골목길로 찾아다니며 냄비 고쳐주는 아저씨를 찍은 다큐멘터리 영상물이었는데 이 아저씨가 납을 끓이더니 뚫어진 냄비 구멍을 천연덕스럽게 메워 주더라고요. 맞아요. 우리 모두 예전엔 다 그러고 살았어요. 그 양은 냄비에 매일 밥을 하고 국을 끓여, 박박 긁어먹으면서 자랐어도 평균수명은 오히려 늘었잖아요. 너무 오래 살아서 걱정인 시대죠. 그런데 뭘 그리 유해 품목까지 신경 세우며 날마다 피곤하게 사나 생각해보니 한순간에 저의 모든 고민이 우스워지더라고요.

 

  그날 이후 저는 이 지구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기로 타협을 봤습니다. 완전 무공해 제품이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지구가 오염된다면 거기 사는 사람도 어느 정도 따라가는 게 자연스럽잖아요. 돈이 없어서 그런 제품을 못 사 먹는다 생각하니 기분만 더 나빠졌고요. 그래서 그냥 대충 먹고살기로 했습니다. 천만년 사는 데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백 년 정도 사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아요. 차라리 그런 신경 덜 쓰고 가족이랑 하하호호 웃으면서 사는 게 더 낫겠다 싶어요. 앞으로는 되는대로 즐겁게 만들어서 기분 좋게 나눠 먹고 행복하게 살다가 갈랍니다. 수리수리 마수리 뾰로록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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