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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6] 처음처럼 다시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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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5-29 09:57 조회5,7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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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처음처럼 다시두리

힐빙스토리

 

  그녀는 팔방미인 슈퍼 울트라 전업주부였다. 집안 인테리어를 위해서라면 장롱이나 피아노도 척척 옮길 만큼 힘도 셌다. 온 집안을 유리알처럼 닦아대야 직성이 풀렸고, 뭐하나라도 삐뚤어져 있는 꼴을 못 봤다. 쇼핑 정보도 빠삭하고 요리도 잘하고 게다가 늘 멋쟁이였다. 아무 때나 들러도 그 집에선 항상 반들반들한 생활의 윤기가 흘러넘쳤다. 아이들을 다 키운 후에는 장사를 하면서 집안 생계까지 해결하는 바람에 그녀 주위의 아줌마들은 저절로 주눅이 들었다. 그랬던 그녀가 얼마 전부터 만나기만 하면 앓는 소리를 했다.

 

  "엄마라는 게 정말이지 아이들 앞에서는 너무나 약한 존재더라. 아무리 신경을 끄자고 결심을 해도 금방 도루묵이 돼. 서른 넘은 자식 놈이 한밤중에 들어와 라면을 끓이고 있으면 내가 잠결에도 일어나 냉장고를 뒤적이는 거야. 김치라도 꺼내주려고. 몇 년 전부터 불면증 생겨서 수면제를 먹고 겨우 잠이 드는 판인데 얘들이 그런 엄마는 안중에도 없어. 그저 아무 때나 들어오고 아무 때나 나가고. 그럴 때마다 강아지마저 요란하게 짖어대니 약이 다 무슨 소용이야. 집인지 우주 정거장인지 매일 어수선해 죽겠어. 저희들 다니기 편하라고 교통 좋은데 사는 건데 외려 그게 더 나쁜 거 같어. 요즘 애들은 왜 그렇게 밤늦도록 잠을 안 잔다니?

 

  남편은 퇴직하고 허전해서 그런지 다 같이 살았으면 좋겠나 본데 난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우리가 그 나이였을 때를 생각해봐. 남편은 넥타이 매고 직장 다니고, 나도 애 엄마였잖어. 그야말로 애들 소꿉장난이었지, 우리가 뭐 그때는 철들어서 결혼했던 거니? 근데 요즘 애들은 손톱만큼도 어른이 될 마음이 없는 거 같어.

 

  그런데 말이야. 결혼을 안 해도 독립은 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 혼자 살 줄도 알아야 함께 살아도 뒤탈이 없지 않겠어? 지금처럼 제 부모가 해준 만큼 세상이 저절로 돌아가는 줄 알고 결혼했다간 당장에 이혼감 아니겠냐고. 끼고 가르칠래도 도저히 손에 잡혀주질 않으니 차라리 직접 경험을 시키는 게 나을 것도 같아. 주위에서는 나보고 무슨 엄마가 그렇게 야멸차냐고 하지만, 정작 엄마 노릇의 완성은 자식을 독립시키는 거 아닐까?"

 

  만사에 거칠 것이 없던 그녀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몇 년째 뭉그적뭉그적 맘고생만  하더니 드디어 얼마 전에 연락이 왔다. 호수가 보이는 한적한 교외에 부부가 살 집을 계약했노라고. 더 늦기 전에 깔끔하게 치워놓은 집에서 그들 부부만 조용히 살아보는 게 소원이랬다. 나중에 다시 합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하고 싶은 건 해봐야겠단다. '자기가 놓아둔 커피 잔이 몇 날이고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는 그런 삶'을 위해 그녀는 기어이 하나의 집을 셋으로 쪼갰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바보 같은 일이었으되, 시대의 흐름으로 보자면 그런 식의 결단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싶어 무척 호기심이 당겼다. 조만간 벌어질 나의 미래 아니던가.

 

  그 집 아이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쿨했다. 엄마의 크고 작은 간섭들을 보살핌의 대가라고 생각해서 겨우 참아 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사 결정을 통보받고는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태연하게 입장을 정리하더란다. 부모와 같이 살기 위하여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할 마음은 없으니 각자의 회사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나가겠노라고. 굳이 긁어 부스럼 내지 말자 생각해서 한 다리 걸치고 있었던 거지, 저희들도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딸아이는 새로 신혼살림을 차리는 것처럼 들떠서 요리조리 바쁜 반면에, 아들아이는 허름한 방 하나만 덜렁 계약해놓고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어서 더 애가 타더란다. 어릴 때부터 천식이 있어서 유난히 엄마의 정성과 보호를 받고 자랐던 아이였다. 대한민국의 대표 ‘까도남(까칠한 도시의 남자)’이라 할 만큼 매사에 취향이 분명해서 모두들 그 아이의 홀로서기가 절대로 순탄치 않으리라 점치곤 했었다. 그런 아들에게 매번 질 수 밖에 없었던 그녀도 이번만큼은 단호했다. 어렵게 떠나보내기로 작정한 끝이어선지 터져 나오는 잔소리를 입술 깨물어 가며 참았더란다. 괜히 청소해준다, 음식 해 준다고 드나들기 시작하면 혹 떼려다 더 붙이게 될까봐 손발이 근질거려도 끝까지 버텼단다.

 

 

 

  이사를 앞둔 마지막 주말, 그녀는 미리 섭외해 놓은 작은 용달차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을 허름한 가구 몇 개와 옷가지들을 아들과 함께 실어 보내는 것으로 강제적인 작별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다. 이제껏 고급 호텔만큼의 완벽한 서비스를 집에서도 누렸던 아이였으니 얼마나 황당했으랴. 정리벽이 있는 엄마가 설마 그렇게까지 무대책 하게 자기를 내보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자신의 잡동사니가 그대로 얼기설기 용달에 실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했는지 실실 실소를  날려가며 이러더란다.

 

  "크크. 나 이제부터 얘네들과 함께 버려지는 거임?"

  고생 끝에 겨우 취직한 지 일 년 만이었다. 거대한 이별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천만 톤의 감정노동을 한 엄마만 황당스럽게 아들은 별 반항도 없이 천진한 얼굴로 용달에 올라타더니 두말없이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고 했다. 의도였는지 우연이었는지 이름도 얄궂게 '꽃미남 이삿짐센타’였더라면서  시트콤 장면을 묘사하듯 그녀는 연신 키들거렸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짠해졌다. 그간 그 아들을 붙들고 수도 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그녀의 눈물어린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서다.

 

  얼마 전에 궁금해서 물어보니, 예상과 달리 두 아이들 모두 정말 잘 지낸다고 했다. 딸 애는 주말마다 집으로 와서 부모와 같이 지내는 게 정례화 되었단다. 자기 일에만  바쁜 동생에게도 매일 부모님과 말 한마디라도 나누라고 이르며  가족 카톡방까지 개설했단다. 아들은 혼자 살게 되면 집에서는 잠만 자고 튀어나갈 줄 알고 아무 준비도 없이 내보냈는데 그 사이에 얼마나 살림꾼이 되었는지 기가 막혀 죽겠다고 했다. 일찍 들어와서 청소랑 빨래를 하기도 하고, 식탁이 없어 무릎에 밥을 올려놓고 먹는 중이라며 카톡으로 익살까지 떨어댄다고 했다.

 

  결혼 삼십 년 만에 그 집 부부는 드디어 처음처럼 둘이 되었다. 각자의 텔레비전을 차지하고 조용히 누워서 쉬기도 하고, 할 일 없이 동네 산책을 다니기도 하고, 강냉이 한 봉지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면서 마음껏 비어있는 날의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란다. 아직까지는 외로움보다는 해방감이나 자유로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축하한다고 했더니, 그녀가 고맙다고 말하더니 혼잣말하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그런데 참 이상하지. 뭔가 모르게, 다 정상적이고 독립적으로 잘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견하기도 하면서 가슴이 텅 비는 이 느낌은 말야. 그게 과연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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