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힐링중

[엄마는 힐링 중 #7] 창 밖에 오신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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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6-12 17:20 조회5,6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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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창 밖에 오신 손님

힐빙스토리

 

  창밖에 새로 피어오른 장미가 '저 봐 달라'고 한 달 전부터 손짓을 했습니다. 무슨 일로 바쁜지 매일 허둥거리느라 눈길조차 주지 못했지요. 그 앞을 오고 가면서 점점 미안해지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아예 마음먹고 한가하게 시간을 내었습니다. 꽃들이 모두 시들어버리기 전에 온전히 마주 앉아 그 이름을 불러주어야 할 것만 같았지요. 음악을 틀어놓고 예쁜 잔에 아껴두었던 차를 우려내었습니다. 차 한 모금, 꽃 한 송이, 차 한 모금, 꽃 한 송이.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되는 일인데 왜 이런 호사를 못 누리며 사는 걸까요. 모처럼 얻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시라도 읽으면 더 좋겠다 싶어서 이리저리 읽을거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했어요. 십여 년 전 날짜가 찍힌 옛날 일기장을요.

 

 

 

 

<작은 놈 유치원 재롱 잔치> 2001년 12월 21일

 

   막내 유치원에서 연말을 앞두고 작은 발표회가 열렸다. 걱정이 많고 매사가 정확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꼬마는 며칠 전부터 무대에 필요한 의상과 준비물을 직접 챙기느라 법석이었다. 뭘 하는지도 잘 모르는 엄마를 앉혀놓고 유치원으로 찾아와야 할 시간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자기가 주로 무대의 어디쯤 나오니까 왼쪽 앞 좌석에 앉아야 잘 보일 거라고 꼼꼼하게 설명도 곁들였다.

 

   큰 아이까지 때부터 치자면 벌써 여섯 번이나 반복되는 연말 재롱 잔치라 이젠 별로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남편은 회사 업무가 바쁘다면서 기어이 아이에게 불참 면죄부를 얻어 놓고 혼자서 희희낙락이다. 엄마인 나도 조그만 유치원 의자에 넘치는 엉덩이를 부려놓고 두 시간을 불편하게 참아야 할 생각에 미리부터 허리가 뻐근했다. 그랬어도 막상 당일이 되니 아침부터 제 누나가 한껏 분위기를 띄워주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먼저 나갔고 나도 시간에 맞춰 딸아이 손을 잡고 즐겁게 집을 나섰다.

 

   유치원에 당도하니 덜 된 꼬맹이들과 씨름하느라 남보다 세 배는 힘들게 사는 선생님들이 힘든 내색도 안 하고 아롱다롱 한 웃음으로 맞아주셨다. 나는 고작 두 놈을 가지고도 매일 쩔쩔매는 엉터리 엄마라 그런 선생님들을 뵙기가 영 민망하고 송구스럽다. 강당에 들어서니 바지런한 엄마들로 벌써 만원이다. 얼른 눈치를 보고 아이가 앉으라던 곳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를 들고 법석을 떠는 가족들의 수선스러움은 무대 조명이 켜지자마자 일순간에 어둠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뉘 집 자식들인지 달덩이처럼 훤한 아이들이 무대 위로 둥실 떠올랐다. 밤늦도록 선생님들이 땀 흘려 마련했을 의상을 두르고 한바탕씩 재롱을 떤다. "오빠"란 노래에 맞춰 함께 춤도 추고, 기악 합주, 영어 연극, 무용 같은 갖가지 재주가 선생님들의 숙련된 무대 연출 솜씨와 어우러져 화려하게 이어졌다. 사이사이 넘어지는 놈, 우는 놈, 심통 난 놈, 부끄러워하는 놈들의 어설픈 NG 연출이 연신 웃음과 재미를 더했다.

 

   하긴 무대 조명이 없은들, 무대 의상이 초라한들 무슨 상관이랴. 저마다 제 아이만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작고 말랐건, 크고 뚱뚱하건, 예쁘면 예쁜 대로 미우면 미운 채로 나에겐 가장 특별한 축복이 아니던가. 이러면 이래서 예쁘고 저러면 저래서 또 즐거운 얘깃거리가 될 것이다. 제 할 일을 해내는 조그만 아이들의 몸짓이 너무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워 감사의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였다.

 

   큰 아이의 첫 행사 때는 카메라에 초점도 못 맞출 만큼 웃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젠 차분하게 앉아 어린 것의 인생을 대견해하며 눈으로만 감상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컴컴한 데 같이 앉아 무대를 향해 연신 웃음을 흘리고 있는 다른 집 엄마 아빠도 다들 무아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아이가 조렇게 예쁜 모습으로 재롱떠는 걸 미처 보지 못 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남의 집 아이가 아무리 잘해도(그런 애 못 봤다) 아무리 잘 생겼어도(그런 애 없었다) 오직 내 아이의 작은 손놀림, 실수, 표정, 그 마음에 탐닉하느라 온 정신을 쏟았다. 다들 행복에 젖어 같은 자리에서 손뼉을 치고 있었지만 저마다의 눈동자엔 자신들에게 특별한 그 아이만 들어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다가 슬며시 웃음이 났다. 자기 애 나올 때면 뛰어나가 비디오를 돌려대는 신세대 아빠나, 끝나고 나서 이야깃거리를 한 보따리씩 만들어내는 말썽꾸러기의 엄마도  결국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우리 애가 요러 저러하게 예쁜(=미운) 짓을 하며 알콩달콩 자라고 있다는 것. 또 그 아이가 나에게 가져다주는 가족이란 의미의 뿌듯한 행복. ‘사랑한다. 다 컸구나.’하는 대견한 마음 같은 것 말이다.

 

 

장미꽃이 장난처럼 숨겨 놓았던 이야기였을까요? 오늘 다시 선물로 받아 온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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