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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8] 사라진 메이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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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7-22 18:48 조회5,5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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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사라진 메이플 스토리

힐빙스토리

 

 

  "으아앙, 몰라 몰라.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다 망쳐버렸어."

 

  일요일 늦잠을 즐기느라 방안으로 비쳐든 햇살과 달콤한 희롱을 하던 참인데 저보다 한 발 먼저 일어난 아들의 방에서 대성통곡이 들립니다. 옷장 문을 손으로 때리고 발을 구르고 난리도 아닙니다.

 

  "내가 어젯밤 열시 반에 깨워 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엄마가 다 망쳐놨어. 엉엉."

 

  늦도록 책을 보다 얌전히 잔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는 건지 듣는 엄마 심사도 슬슬 꼬이지만 무슨 일이 틀어졌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긴 어젯밤 10시 15분에 자면서 10시 30분에 깨워달라고 한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은 두 번이나 다짐을 두고 누워 잠이 들었지만 전 들을 때부터 가망 없는 소리라서 그저 '오냐오냐' 건성으로 대답하고 지나친 것이지요. 토요일이라 낮에 수영장엘 갔다가 저녁엔 농구까지 하고 온 아이인데 자기 시작한지 15분 만에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겠어요. '뭐, 못한 일이 있으면 내일 하면 되겠지.'하며 들을 때부터 깨울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제 그 시간에 꼭 일어나지 않아서 망친 일이라는 게 대체 뭘까?' 아들의 통곡 소리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아이가 며칠 전부터 열중하던 컴퓨터 게임이 생각났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같은 시간에 '메이플 스토리'라는 인터넷게임에 들어가면 일주일 만에 케이크를 상품으로 받을 수 있다고 신이 나 있었지요. 그 먹지도 못할 사이버 케이크에 혹해서 종일 엄마 비위를 맞춰가며 제 할 일을 다 끝낸 후, 게임 허락을 받으려고 며칠을 밤마다 전전긍긍했거든요. 거의 일주일이 다 돼서 케이크를 받을 직전이었는데 아마 어젯밤에 그 시간을 놓쳐 여태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었나봅니다. 쯧쯧, 얼마나 속이 상할까요.

 

  한 시간 쯤 지나 아침 먹으라고 식탁에서 부르니 불퉁한 얼굴로 발을 퍽퍽 굴러가며 나옵니다. 못 본 척 놔둘까 생각하지만 결국 내 입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밥상머리에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합니다. 엄마에게 ‘메이플 스토리’를 꼭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해줬으면 꼭 깨웠을 텐데 왜 말을 안 했느냐, 그깟 게임 때문에 엄마 탓을 그리 오래 해서 되겠느냐, 네가 못 일어났으면 네 잘못이지 왜 남의 탓을 하느냐, 남의 탓을 해서 문제가 해결되느냐, 자기반성을 하고 개선점을 생각해야 발전이란 게 있는 것이다....

 

  뻔한 훈장 소리가 줄줄이 사탕으로 나옵니다.

 

 

 

 

  아이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눈을 세모꼴로 뜨고 못마땅한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그만 눈물이나 닦고 오라고 목욕탕으로 보내고 나니 옆에서 조용히 듣던 딸아이가 한마디 거듭니다.

 

  "엄마, 내가 들어보니 이번 일은 엄마가 잘못했네. 그렇게 여러 번 깨워달라고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깨워 줬어야지. 저럴 땐 정말 기분이 개떡이니까 괜히 건드리지 말고 놔둬요."

 

  상기된 목소리로 막 훈시를 끝낸 저는 갑자기 머쓱해졌습니다. 웬만하면 엄마 편을 들어주던 딸이라 더 그랬지요. 하긴 자기도 중학교 때 50일 간 매일 일기를 써 올리면 무료로 책을 만들어준다는 인터넷 이벤트에 도전했다가, 결국 단 하루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 경험이 있으니 동생 마음을 더 이해하나 봅니다.

 

  저는 갑자기 야단맞은 아이처럼 의기소침, 식탁 옆에 찌부러져 곰곰 생각에 잠겼습니다. 얼마전에 남편과 다툴 때 그 사람이 했던 하소연도 생각납니다.  

 

  "남의 이야기를 제발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여라. 네 마음대로 미리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아라."

 

  제 딴에는 남의 마음을 먼저 읽고 배려한다는 행동들이, 당사자에게 오히려 민폐로 작용하는 경우가 왕왕있습니다.  말한 대로만 했으면 되었을 일을 적당히 새겨듣고 알아서 판단하다가 낭패를 보는 거지요. 그렇지만 솔직히 억울하긴 합니다. 이번 일도 애가 깨워달라고 하면 그냥 깨워줄 것을 '피곤해서 못 일어날 텐데 다음에 하지.'라는 엄마의 판단으로 아이 를 그냥 재운거지요. 그래요. 인정합니다. 저에게 ‘엄마병’이 있다는 거 알아요. 온 가족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생각해주는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하니까 모든 상황을 엄마가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다고 자만해버리는 거겠지요. 본의 아니게 가족 위에 군림하는 모양새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이력이 붙을 때도 되었거만, 늘 이 지점에서 저는 주춤거립니다. 가족 하나하나 다 각자의 생각과 상황이 있는데 그걸 제대로 존중해주지 않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적당히 까뭉개버리는 습관을 반성하다가도, 이게 다 자기들 잘 되라고 그러는거 아니냐는 마음이 스윽 찾아옵니다. 그렇게 왔다 갔다, 갔다 왔다 합니다.

 

  하지만, 역시 저는 고단하게 잠든 아이를, 설령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를 아이가 받을 수 있다 해도, 차마 깨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엄마 때문에 다 망쳤다는 짜증을 다 받더라도, 새끼가 쌔근쌔근 자는 모습을 차마 어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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