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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9] 널 보러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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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9-03 20:48 조회5,8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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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보러 오는 거야

힐빙스토리

 

 여자는 결혼하면 시집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던 시절이 있었지요. 요즘 들어서는 거창하게 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여전히 시집의 전통과 문화에 적응하는 게 결혼한 여자의 첫 번째 관문이지요.

 

 저도 그랬어요. 결혼 전에는 세상 모든 것이 내 맘대로요, 내 기준으로 돌아갔는데 시집을 오니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저들 맘대로요, 저들 기준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새댁 신분이라 몸가짐은 얌전히 지니고, 얼굴에는 웃음을 띠우고 있었으나, 번번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살짝 언짢기도 했어요.

 

 그 상황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어요. 비유하자면 순대를 된장에 찍어먹는지 고추장에 찍어먹는지 소금에 찍어 먹는 지로 다투는 꼴이었지요. 물론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렇다는  거예요. 무엇으로 찍어먹은들 자기 입맛대로 먹으면 그만인데, 그 방식이 막 시집 온 저만 다르다는 게 문제였지요. 혼자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시집식구들이 딱히 저를 놀려먹는 것도 아니었어요. 매번 밥을 먹기 전에 물부터 한 모금 마시는 나의 오래된 습관이나, 실속보다는 소소한 겉치레를 소중히 생각하는 나의 취향을 재밌어 했던 것뿐이지요. 다만 그 당시엔 어린 나이였는지라, 낯선 가족에 둘러싸여 난생 처음 '마이너'가 될 수밖에 없던 제 입장만으로도 어딘지 모르게 억울했던 것이지요.

 

 그 은은한 분노를 풀 기회가 생겼어요. 바로 우리 아이 첫돌이 다가왔던 거지요.

 

 요즘에는 돌잔치를 바깥에 나가서 편하게 하지만 제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만 해도 다들 집에서 했어요. 대가족이 풍속이었던 시대였죠. 그나마 저는 부모님을 한 집에 안 모시고 살았으니 핵가족 시대의 첫 수혜자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아무튼 저는 우리 아이 첫돌을 맞아 호기롭게 양가 집안 식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어요. 온전히 내 방식으로, 특히 시댁 식구들을 맞이하고 싶었던 거죠.

 

 시댁은 이북 출신이어서 먹성이 참 좋고 걸지게 드셨어요. 마치 피난민의 설움을 잘 먹는 것으로 달래려 작정한 것 같았어요. 모양새나 그릇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지요. 되도록 푸짐하게, 한 가지를 먹더라도 옹골차게 먹었지요. 반면 제 친정은 외형과 폼새를 중시하는 집안이었어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골고루 준비해서 구색을 갖추는 게 먼저였지요. 사람들은 친정어머니의 한정식을 격조 있다고 칭찬하곤 했어요. 아마 그때 저 혼자 별렀던가 봐요. 여봐란 듯이 번듯하게 상차림을 내어 시집식구들에게 은근히 눌려 있던 제 마음을 만회해보려는 속셈이 나름 생긴 거지요.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욕심인지를 깨우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애시당초 어린 아이 하나 혼자서 키우는 것도 힘에 겨운 젊은 여자가 서른 명의 한정식을 준비한다는 것부터가 미련한 짓이었지요. 잔칫날 며칠 전부터 식단을 짜고 시장을 가고 그릇을 빌리러 다니는 것으로 체력은 이미 동이 났지요. 지금 같으면 돈을 들여서 회 두어 접시 배달하고 갈비찜 한 통 준비하는 것으로 대치할 수도 있으련만, 그때는 또 언감생심의 빠듯한 신혼살림이었어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도 만들어 내야 겨우 폼이 날 것만 같았지요.

 

 

 

 

 

 갖은 고생을 해가며 어찌저찌 구절판, 해파리냉채, 각색 전유어, 소고기 산적, 샐러드까지는 만들었어요. 거기에서 그만 멈춰야 했어요. 조금 더 돋보이려고 '파강회'까지 한 접시 더 해내려던 게 문제였어요. 아이까지 있으니  손님상을 당일에 준비하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 제 딴엔 미리 해놓을 수 있는 요리를 고른 거였지요. 가끔씩 친정 상에 오르던 파강회가 문득 떠올라 메뉴로 추가했던 것이에요. 하지만 막상 만들다 보니 실파를 살짝 삶아내어 한 졸가리씩 돌돌 말고 잣까지 끼워 마무리를 하는 꼼꼼한 수작업은 다섯 명의 아낙네가 빙 둘러앉아 있을 때에나 가능한 요리라는 걸 전날 오밤중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 겁니다.

 

 하는 수 없이 간간이 깨어 우는 아이를 달래어 가며 조물락조물락 그 밤을 거의 새웠지요. 다음 날은 미리 오신 시어머니 하명을 받아​ 돌상을 준비하느라 병풍을 날라 오고, 실 꾸러미를 구해 오고 이런저런 손님맞이로 혼이 쏙 빠져버렸어요. 그 때 마침 친정 부모가 도착하셨지요.

 

 오랜 만에 오신 우리 부모님은 저와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눈 채 정신줄 놓고 돌아다니는 막내딸을 안쓰럽게 지켜보셨습니다. 저는 그 마저도 눈치 채지 못했어요. 한 판 멋지게 차려서 폼을 재보려던 애초의 각오도 잊어버린 지 오래고, 그저 여기서 안녕하세요, 저기서 이거 주세요, 얘야 이리 와서 간 좀 보거라, 언니 큰 칼은 어딨어요 같은 사방팔방의 부름을 쫒아 다니느라 미친 여자처럼 뛰어다녔지요.

 

 그런 막내딸을 아버지가 잠시 오라고 하더니, 내 가쁜 숨의 끝마디에 느리게 한 말씀하셨습니다.

 

"○○야. 사람들은  네가 한 음식을  먹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라, 안주인인 너를 만나려고 온 것이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맞아요. 시집보낸 막내딸이 한 팔에 아이를 끼우고 부엌을 뛰어 다니며 땀을 비질비질 흘리는 모습 어디에도 안주인다운 기품이 없었으니 얼마나 아버지 속이 상하셨을까요? 아버지의 그 말을 들었을 때, 지이이잉하고 어디서 징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주변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더군요. 그나마 아버지의 그 말씀으로 인해 정신을 차렸지요.

 

그 날 손님들이 돌아가는 길에 모두들 많은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시누이와 올케, 형제자매에게도 많은 덕담을 들었지요. 보기보다 옹골차다는 말도 들었고 음식 좋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남편이 저보다 더 흐뭇해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까지 제 마음에 남은 말은 그분들의 칭찬이 아니었어요. 아버지의 그 말씀,  ‘안주인인 너를 보러 온 것이다.’ 라는 말씀만 명징하게 생각납니다. 가끔, 어떤 일로 제가 마음이 분주하고 몸이 바쁠 때, 한번 씩 징소리처럼 그 말씀이 들립니다. “얘야, 지금 너의 정신은 어디 가 있니? 사람들은 바로 ‘너’를 보려고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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