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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11] 세월이 키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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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11-25 10:06 조회5,4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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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세월이 키우는 거지

힐빙스토리

 

 

 

 

  며칠 전, 작은 아이가 수학능력고사를 보았습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인지 마음마저 나부끼는 낙엽처럼 하루 종일 서성대었지요. 끝날 시간에 맞춰 시험장으로 찾아갔습니다. 교문 밖에 우두커니 서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늘 돌멩이처럼 머리를 짓누르던 부담감에서 드디어 놓여나는구나, 홀가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하고 억울하고 서럽기까지 하더군요. 그간 입시전쟁을 치르는 아이에게 퍼부어야 했던 말 못할 고생은 물론, 그런 속에 자식을 두고 엄마로서 지닐 수밖에 없었던 갈등과 고민들이 올올이 떠올라 눈물마저 찔끔 나오려고 했습니다.

 

  첫째 아이를 기를 때는 어설프고 불안한 마음에 두 귀를 팔랑대며 이 사람 저 사람이 권하는 대로 따라다녔습니다. 공부 잘하는 다른 집 아이들을 곁눈질 해가며 조간신문에 묻어 들어오는 학원 광고지를 꼼꼼하게 살피고, 누가 끼워만 준다면 두말 않고 과외 팀에 밀어 넣기도 했었지요.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자기 속도에 따라 영글어 가지 못하고 시시각각 미세한 차이를 다투느라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겁니다. 과연 아이들을 이렇게 공부를 시키는 게 맞나 고민을 하면서도 자칭 교육전문가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가려서 들을 만한 내공이 없었으니 말 그대로 '그저 끌려 다녔던' 셈입니다. 가뜩이나 서두르는 걸 싫어하는 아이가 잠 한번 마음 편히 못자고 동동거리면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을 때는 그 상황에 어영부영 올라탄 제 심정도 여간 상해버린 게 아니었지요. 꽃다운 이팔청춘의 소녀감성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큰 아이에게는 그런 이유로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그 바람에 이득을 본 건 오히려 둘째 놈이었어요. 학원가에 내놓고 뺑뺑 돌려봐야 돈과 에너지만 낭비하는 거지 오히려 성질은 강팔라지고 효과는 그만 못하더라는 결론에 힘을 얻었거든요. 이번에는 아예 본인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분출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확신할 수 없는 결과를 위해 아이를 몰아세우다가 자칫 ‘관계’마저 해칠까봐 두렵기도 했지요. 억지로 학원도 안 보냈고 학교 자습도 알아서 하라고 아이에게 무한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랬는데도 역시 마음의 평화는 찾아오지 않더군요. 여전히 아이에게는 공부 자체가 스트레스였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무기력증에 빠져서 집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길어진 다리를 아무데나 부려놓고 흐느적거리는 아이 꼴을 보아 내는 저의 심사가 날마다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결국 아이는 뒤늦게 늘어진 공부를 메워내느라 한 해를 더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올해로 두 번째 수능시험을 보는 참이었던 것이지요.

 

  문자가 또르릉 도착했습니다. ‘시험은 끝났으나 아직 나가라는 교내방송이 안 나오니 좀 더 기다려야 나갈 수 있다.’고요. 평소에는 엄마의 열 마디에 반 토막도 응대를 안 하는 소통불량자건만 날이 날인지라 추운 길거리에 서 있을 엄마에게 신경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그 문자를 받고 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도 문자 보낼 정신이 있는 걸 보니 패닉 상태에 빠질 만큼 시험을 망치지는 않았나보다고 조심스럽게 유추해봤던 거지요. 조마조마한 수능 날 하루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저녁에는 순서대로 발표되는 정답표에 온 신경을 세워 채점을 해보기 바빴습니다. 실수로 틀린 것도 많지만, 확실히 알지 못한 채로 맞은 것도 있으니 억울할 것도 없다면서 아들이 먼저 마음을 비웠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다 공부라면서 아이 등을 두드려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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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그리했으면서도 며칠 동안 제 마음 안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과 죄책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은 이까짓 시험 하나 보자고 그렇게 아이들과 오래도록 노심초사 했던 것일까 싶었거든요. 자꾸만 바둑 복기 하듯이 지난 세월을 되짚게 되더군요. 여러 가지 후회도 일어나고, 토막토막 반성할 일도 생각나서 마음이 영 개운하질 못했습니다. 대학 입시만 마치면 저도 미성년자 보호자 노릇에서 기분 좋게 손을 털겠다고 벼르던 와중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모처럼 친구를 만난 길에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녀는 아무 갈등 없이 우아하게 아이들을 잘 길러서 군대도 보내고 취직도 시키는 것 같아 항상 부러웠던 친구였지요. 저 혼자만 전전긍긍하며 아이를 키우는 아마추어 엄마같아서 고백을 하면서도 조금 부끄럽더군요.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친구가 웃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지? 첫째 길러보고 실수한 거 보완해가면서 둘째를 길러보면 그게 또 실수인 것 같고 말이야. 나도 그랬어. 맨날 그렇게 걱정하면서 갈등하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다 가 있더라. 내가 뭘 어떻게 해서 키운 게 아니고, 그냥 세월이 지나니 저절로 크는 거더라고. 하하하.“

 

  자식은 부모가 어떻게 해서 키운 게 아니라 세월이 저절로 키워주더라는 그녀의 말에 무거운 짐을 벗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냉큼 '히히힛~ 그런 거 맞지?' 하면서 맞장구를 쳐댔지요. 며칠 만에 제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니 비워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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