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힐링중

[엄마는 힐링 중 #12] 아참, 나 아줌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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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5-01-07 15:34 조회5,7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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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아참, 나 아줌마지.

힐빙스토리

 

 

 

 

 여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어느새 가을이 소리도 없이 왔다가 벌써 추위에 밀려 저만치 사라집니다. 올 가을 단풍은 특별히 더 예쁘더라고 올림픽공원을 산책하면서 메시지를 보내준 친구 덕분에 하고 싶은 일 리스트가 하나 더 늘었어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기어이 올림픽 공원 소마미술관 옆 커피숍에서 카푸치노 한 잔과 더불어 단풍 구경을 해보리라고 벼르게 되었으니까요.

 

 마음과 달리 11월이 넘어서면서도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에서 발을 못 빼고 시간만 보내다가 우연히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어수선한 머리를 정돈하겠다고 마음먹고 일요일 오후에 시간을 넉넉히 잡아 미장원엘 찾았는데 손님이 너무 많다고 다음에 오래지 뭡니까. 파마까지 하려고 책도 한 권 들고 나선 참인데요. 내친 김에 멀지 않은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막간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일 리스트 하나 줄여야지요.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의 쉼표는 나폴레옹 군대가 알프스 점령하듯이 치열하게 노력을 해야만 얻어지는 것 같아요. 저절로 생겨서 부리는 여유가 아니라 기어이 획득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득의만만하게 입성을 하여 카푸치노 한 잔을 시키려니 휴일이라 그런지 줄이 꽤 깁니다. 꼬랑지에 서서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커피숍 안은 물론, 밖에 있는 파라솔까지 손님으로 꽉 차서, 빈 테이블은 고사하고 빈 의자도 하나 없을 지경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되는 커피숍일까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커피를 마시러 나와 있는 것만 같습니다.

 

 잠시 낙엽이나 밟으며 산책이나 하고 갈까 망설였지만 추워질 것 같아서 그대로 머물기로 했습니다. 마침 운 좋게도 창가에 빈자리가 하나 났거든요. 아늑한 분위기까지는 기대할 수 없겠지만 가을 내내 벼르던 일이니까요.  카푸치노 한 잔과 함께 읽던 책까지 펴들고 나니 그새 많이 어둑해졌습니다. 눈이 시리다던 단풍잎은 죄다 어둠에 묻혀 회색으로 변해가는 판이었고요.

 

 순식간에 밀물처럼 어둠이 들이닥치면서 창문을 가득 채우더니 가을 풍경은 고사하고 우두커니 앉은 제 모습만 검은 유리창에 덜렁 되비칩니다. 하는 수 없이 책이나 마저 읽으려는데 시끌벅적한 한 무리 손님이 나가더니 옆자리에 어여쁜 남녀가 새로 들어와 앉았습니다. 동그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작은 소리로 속닥대기 시작합니다. 속닥만 대는 게 아니라 양 손을 꼭 마주잡고 조물조물 만져가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끝이 없습니다. 서로 좋아 못 견디겠다는 표정들입니다. 먼저 손님보다 훨씬 조용한데도 자꾸만 온 신경이 그리로 쏠려갑니다.

 

 '내 언제 누구와 저렇게 마주앉아 좋아죽겠는 속닥이를 떨어봤던고.' 생각하며 내심 부러웠던 거지요. 다 빨아먹고 난 사탕의 감촉이 텅 빈 입 속에서 허전하듯 그렇게 혼자서 한 숨을 짓다가, 겨우겨우 책 한 장을 넘기곤 했으니 진도가 나갈 리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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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문득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저 연인들은 옆에 혼자 앉은 '늙다리 아주머니'가 얼마나 신경 쓰일까 싶었지요. 제가 책장에 눈을 박고 혼자 별 생각을 다하며 남의 사랑을 훔쳐보는 딱 고만큼, 그들의 은밀한 사랑이 옆자리 아주머니의 콧구멍으로 새어나가고 있는 것을 그들도 느끼고 있으려니 생각하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연인들로 꽉 찬 커피숍 안에 끼어든 제 몰골이 얼마나 생뚱맞을까요.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카페 문을 나서려는데 바람이 겨울보다 싸늘하게 달려듭디다. ‘아~참. 나 아줌마지.’하는 뒤늦은 자각 때문에 마음이 더욱 시렸나 봐요.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듣던 딸아이가 엄마의 시린 마음을 위안 한답시고 글쎄 이럽니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젊은 연인들은 엄마 같이 나이 먹은 아줌마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저 ‘저 놈이 나보다 더 멋진가, 저 년이 나보다 더 예쁜가?’ 그런 거에만 신경 쓰지. 흐흐흐~ 엄마야 말로 정말 아줌마만이 할 수 있는 착각을 하셨구랴.”

 

 이럴 수가! 위로를 한다고 건네는 딸아이의 말이 시리다 못해서 얼음물을 바가지 째 뒤집어씌우는 것만 같습니다. 으흐흑. 오오냐, 좋다. 아줌마 맷집은 이러면서 강해집니다. 너무 강해져서 때론 슬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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