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힐링중

[엄마는 힐링 중 #15] '안먹어'에도 흔들리지 않으련다

페이지 정보

작성일15-06-18 11:05 조회4,408회 댓글0건

본문

엄마는 힐링 중
 

‘안 먹어!’에도 흔들리지 않으련다

힐빙스토리

 

 

 

 

 요사이 정신없이 바빠서 찬찬히 음식 만들 새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큰맘 먹고 식구들에게 '집밥'을 해주려고 별렀지요. 어쩔 수 없이 내일 저녁은 또 집을 비울 일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이리저리 생필품도 몇 개 떨어졌기에 집 앞 슈퍼로 나가려는데 남편 전화가 옵니다. 회사에 급한 용무가 생겨 지방출장을 가는 중이니 밤늦게나 돌아올지 말지랍니다. 대학생인 딸아이는 새 학기 첫 주라 일찍 들어오기는 어려울 테고,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집에 있는 아들놈 하나만 먹이면 될까 봅니다.

 

 이 놈은 학교에서 주는 저녁급식은 아예 신청도 안하고 오후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들어와서 일단 쉬어야만 하는 아이입니다. 제 애간장이 보통 타는 게 아니지만 타이르고, 위협하고, 때린다고 말을 듣는 아이가 아니라서 스스로 깨닫도록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 아이가 날마다 먹고 싶은 것은 어찌 그리도 다양한지요. 귀찮아하다가도 아직 엄마에게 부릴 어리광이 더 남았나 싶어서 그 비위를 맞춰주기도 합니다. 

 

 저녁에 불고기를 해주려고 슈퍼에 가서 곁들여 먹을 상추 쑥갓 깻잎을 한웅큼씩 사는데 이것들이 오늘따라 왜 이리 비싼지 후덜덜. 조금 멀더라도 단골 시장에 다녀올 걸 후회를 해가면서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과일도 똑 떨어졌는데 마땅한 게 없어서 가격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 바퀴 다시 둘러보면서 세일하는 걸로 살까말까, 오래 두면 상할 텐데 집에 있는 거부터 먼저 다 먹고 사러 올까 어쩔까…… 별별 고민을 다 하며 저녁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난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막 한 밥'을 제일 좋아하는 아이라서 여름 지난 다음부터는 찹쌀도 한 줌 얹어 밥을 짓고 있는데, 아들놈이 공연히 부엌에 와서 한 두 마디 나누다가 생각지도 않은 일로 팩하니 삐져버렸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버릇없이 제 주장만 해댈 때는 수월하게 져주는 법이 없는 꼬장꼬장한 엄마인지라 까칠한 사춘기 아이의 성미를 그만 건드려 놓은 것이지요. 아이는 더 이상은 대꾸도 안 하고 제 방으로 철수를 해버립디다.

 

 그 와중에도 이 엄마는 손으로는 천연덕스럽게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쌈장을 만들고 야채를 씻었지요.

 

"우진아. 나와서 밥 먹어라."

 

 오늘은 저녁 먹자마자 과외 선생님이 오시기로 한 날이라 제 마음도 바쁩니다.

 

"안! 먹! 어!!!"

“.......”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더 이상 아이 감정을 덧들여봐야 좋을 일이 없지요. 가만히 저 혼자 도를 닦습니다. ‘참자 참어. 깡마른 녀석이라 속이야 타지만 설마 한 끼 안 먹었다고 말라 죽기야 하겠느냐, 그래 까짓 것 매달리지 말자. 성질 떨지도 말자. 참자 참어.’ 

 

8b6575b3badc5d142acaab7ea5031527_1434593

 

 

 결국 그렇게 아이 먹으라고 차려 놓았던 저녁밥상을 저 홀로 앉아 먹어 치웁니다. 그래, 네 놈들이 성질부리며 '안 먹어!'해댈 때 이 엄마는 얼마나 많은 노동을 무위로 돌리며 파놓은 구덩이 다시 메우는 사람처럼 한심한 일상을 반복해야 했는지 늙어보면 알겠지, 저도 크면 알겠지. 우리 엄마는 직장 다니느라 이런 꼴까지 당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성깔만 세우던 사춘기 시절에는 일주일에 두 번은 부엌에다가 '안 먹어!'를 외쳐댔으니 이제 와서 뭐라고 할 말이 있겠는가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시절엔 집안에 먹을 입이 워낙 많아서 나 하나 안 먹는다고 뻗대봐야 눈 하나 깜짝하는 사람이 없었지만요.

 

 철 덜 나서 그렇겠지, 나이 들면 알겠지. 난들 그 맘 때야 부모 맘을 헤아렸던가 생각해 가며 혼자서 다둑다둑, 맛있게 상추쌈에 고기를 얹어 먹습니다, 아귀아귀. 하긴 생각해보니 저도 오늘은 종일토록 제대로 된 밥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오후 늦게야 빵으로 허기를 때운 탓에 굳이 저녁밥까지는 안 먹으려 했었지만 저 놈이 제 부아를 이렇게 긁으니 속이 상한 나를 위해 혼자라도 맛있게 먹어야지 어쩌겠습니까, 냠냠쩝쩝.

 

 ‘그래도 이놈아 네가 어른 되거들랑, 뒤늦게 이런 불효를 반성하며 같이 있는 마누라 제쳐두고 '우리 엄마, 우리 엄마'하며 어리광쟁이 노릇은 하지 말거라. 이 엄마는 사랑에 관한 한 신용카드는 안 받는단다. 무조건 현금박치기다. 그 때 미처 못 줬거들랑 그냥 잊어라. 나도 잊을게. 엄마한테 뒤늦게 사랑 갚는답시고 네 마누라 홀로 외롭게나 하지 말고.’

 

 겨우 사춘기 아들놈이 제 성질부리느라 차려놓은 밥 안 먹었다고 이렇게 치사하게 글로 고발하는 이 어미의 못난 짓도 용서하여라. 난 그저 지금 못 받더라도 슬프지 않으려고, 웃으며 흘려버리려고 그래서 하는 짓이여. 그러니 이제 계산 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