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힐링중

[엄마는 힐링 중 #1] 꽁치 한 마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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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3-10 16:18 조회14,56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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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꽁치 한 마리 때문에

힐빙스토리

 

 

   꽁치 한 마리 때문에
 
 
 학부모 모임에 갔는데 어떤 엄마가 이러대요.
 
  "저는 처녀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목사님이 결혼 전에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면 미리 기도를 하라더군요.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시려면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기에 원하는 남편의 조건을 185개나 꼼꼼하게 작
   성했어요. 날마다 그걸 보면서 기도했더니 정말 거기에 꼭 맞는 남자를 만나게 해주시더군요.
   그래서 결혼을 했답니다."

 좌중의 아줌마들이 부러움에 가득한 탄성을 질렀어요. 다음 순간 그녀가 조용히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살다보니 제가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던 872가지의 리스트가 더 있더군요."
 
 다들 조금씩 안도하는 눈빛을 교환하며 말 못할 웃음을 흘렸지요.
 

 
 어느 학교 선생님 이야기도 생각나요.
 그 선생님은 학기 초에 짝을 정하면 일 년 내내 한 번도 안 바꿔주더래요.  아이들이 아우성을 칠 때마다,
 요지부동. 그저 이렇게만 대답하셨대요.

  "이것들아! 나중에 결혼할 걸 생각해봐. 한 번 정하면 아무리 중간에 마음이 바뀌어도 평생 가야 하는 거야.
   그러니 이제부터 연습해. 처음 짝을 고를 때는 신중하게 결정하고 정해졌으면 괴로워도 일 년 동안 끝까지
   서로 맞춰봐!"
 
 아마도 그런 게 결혼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잘 골라 깨를 볶아도 부부가 살다보면 자기 눈을 찌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단점도 하나
 둘씩 눈에 보이고, 처음엔 장점이던 것이 나중엔 단점으로 변하기까지 하니까요. 요즘엔 그런 고비를 못 넘
 겨 그만두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지만 재혼한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노력해야 살아지는 거였으면 첫 번째 사람과도 잘 살 수 있었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이몽룡과 성춘향'도 결혼해서 오래도록 살았으면 별 수 없었을 거예요. 영화 ‘타이타
 닉’만 해도 그래요. 젊은 남녀가 우연히 만나서 며칠 찌릿하게 끌린 걸 추억으로 아름답게 포장한 거잖아요.
 그 때 사고 없이 배에서 고이 내려 결혼까지 했으면 그들도 역시나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웬 심술이냐고요? 그만큼 결혼생활이 서로를 속박하고 자유로운 감정을 방해하는 올가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기 때문이지요. 저만 그렇겠어요? 남편은 하소연도 못하고 꾹꾹 참았겠지요. 그래서 어떨 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동화책의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고치고 싶기도 해요. ‘오래도록 함께 살며 잠
 깐씩 행복했더래요’로.
 
 
 우리 부부도 신혼 며칠 만에 ‘오래오래’의 환상에서 깨어났어요. 꽁치 한 마리 때문에요. 결혼 전에 제가 꿈
 꿨던 아름다운 결혼 생활이란 아버지가 온전히 밥벌이를 하는 가정에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둘러앉아
 모들 하하호호 하는 장면이었어요. 결혼을 하게 된다면 전업주부로만 살 작정이었어요. 제가 맞벌이 부
 모에게서 자랐기에 엄마의 빈자리가 늘 그리웠거든요. 어쩌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신나게 웨딩마치를
 릴 때만 해도 그 조항은 미리 의기투합이 된 상태였지요. 이제 맛있는 밥상 앞에서 깔깔거릴 일만 남았었는
 데 난데없이 꽁치 한 마리 때문에 순식간에 단꿈이 사라져버렸어요.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예요. 남편이 좋아하는 생선구이를 해주려고 꽁치 한 마리를 살
 뜰하게 구워 식탁을 차려놨어요. 그런데 이 남자가 마주 앉더니 혼자서 통통한 등 쪽 살만 신나게 발라먹는
 겁니다. "뭐야? 왜 반대쪽은 안 먹어?" 했더니 이럽니다. “난 원래 내장이 있는 쪽은 쓴 맛이 나서 안 먹어.”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앙칼진 제 목소리가 식탁등을 흔들었습니다. "원래애? 아니, 우리 둘 밖에 없는데 그
 럼 이 나머지 쓴 쪽은 버리라는 겨? 나 먹으라는 겨? 엉!"
 
 사실 남편에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여태 하던 대로 자기 좋아하는 부분만 맛나게 먹었을 뿐이
 지요. 그런데도 갑자기 아내가 도끼눈을 치뜨고 소리를 지르니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 순간에 저는 비로소 막연했던 결혼생활의 단꿈에서 깨어났어요. 결혼이라는 추상적인 의미가 꽁치 한 마
 리와 함께 실감나게 다가오더군요. 이전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참으면서 지탱해주었던 우리 삶
 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문제가 말이지요. 아직도 그런 고민을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여전히 끙끙거리
 며 삽니다.
 
 모양만 달라졌을 뿐 우리 부부에게 비슷한 갈등이 번번이 반복될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이 날의 꽁치 한 마
 리가 의미심장하게 날아다니곤 해요.
 
 어느덧 산전수전공중전 다 치르며 중년의 뒤안길로 들어서니 사랑이란 건 각자의 노력과 인내의 세월 속에
 서 조금씩 영글어가는 열매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요. 수시로 진저리를 치며 살다가 마침내 결혼에 대
 한 긍정성을 깨닫게 된 거지요. 심지어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제도가 결혼일지도 모른다는 마음
 까지들어요. 철모르는 두 사람이 약속을 맺어 자기를 낳아준 부모보다 더 긴 세월을 함께 살아가는 부부에게
 는 그런 이유로 가끔 감동을 받습니다. 속상할 때마다 뒤집었으면 열두 번도 더 결판났을 사연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많았을까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굽이굽이 같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삶의 여정을 그렇게 오래 간
 다는게 말이에요. 제가 관련 장관이었다면 결혼 40년 이상 된 분들에게는 모두 표창장이라도 드리고 싶어진
 답니다.
 
 생각난 김에 저도 오늘 저녁엔 꽁치 한 마리나 구워서 식탁에 올려야겠습니다. 표창장보다 더 실용적이기까
 지 하네요 뭐.
 

 

댓글목록

여행별님의 댓글

여행별 작성일

꽁치한마리의 교훈이라...
문득, 길쭉한 상추 네장에 억울해하던 누군가가 떠오르네요 ㅋ

섬님의 댓글

댓글의 댓글 작성일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