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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2] 신혼여행지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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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3-18 08:42 조회6,0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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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힐링 중
 
신혼여행지에서 생긴 일

힐빙스토리

 

 

   신혼여행지에서 생긴 일
 
 
  # 그 여자의 결혼실록 제 1장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신혼 여행지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우리들 결혼생활의 전주곡이었다는 걸 그때야 어찌 알았으랴. ‘성실하고 다정한 남편’, ‘따뜻하고 아름다운 보금자리’, ‘사랑과 웃음이 흐르는 행복한 결혼생활’ 같은 말들은 얼마나 애매모호한 관념의 성찬인가. 우리는 그럼에도 눈에 콩깍지가 쓰여서 각자의 야무진 꿈을 마음에 품고 웨딩마치를 울렸다. 제주도 호텔도 멋지고 바다는 파랗고 하늘은 높고 우리는 신혼 부부였다.
 
신랑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더니 호텔 로비에서 호기롭게 '낚시배 투어'를 예약하였다. 낚시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그 때는 몰랐다. 그냥 바다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으로 나를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 줄만 알았다. 다음 날 우리는 작은 통통배 하나를 전세 내어 희희낙락 바다로 낚시를 떠났는데 선장님의 과잉 친절이 문제였다. 손님의 일생일대 허니문을 멋들어지게 만들어주고 싶으셨는지 근처의 예쁜 섬들을 배로 돌아봐주겠다고 하신 거다. 예뻤다. 멋졌다. 환호했다. 웃었다.
 
신부의 하이톤 웃음소리에 힘을 받으셨는지 선장아저씨가 기꺼이 몇 개의 섬을 더 뱅뱅 돌았다. 구경할 때는 신나서 몰랐었는데 배가 자리를 잡아 멈추고 나니 이번엔 내 머리가 뱅뱅 돌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배 한 켠에는 이제 막 신나서 낚시 장비를 펼치는 신랑의 모습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하는 중이었다. '우웩' 토했다. 또 토했다. 조금 있다가 또 한 번 '우웩'. 끝이 없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쉴 새 없이 울렁거리고 참을 만 하다가도 또 토악질이 났다.
 
"어이구~ 밑밥까지 뿌려 주시네. 고기가 잘 물겠는 걸?"
그렇게 말하는 신랑을 그 때 정리해고 했어야 했다. 아직 콩깍지가 덜 벗어진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 유머로 넘겼지만 말이다. 기다려 봐도 울렁증이 가라앉질 않았다. 선장님이 낚싯줄을 내 손에 쥐어주시며 직접 해보란다. 낚시 재미에 빠지면 멀미도 멈춘다나? 한참 만에 낚싯줄에 매달려 올라온 생선이 뱃전에 허연 배를 드러내고 퍼덕거리는 걸 보고 난 또 잊었던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왝~ 왝왝에엑" 결국 보다 못한 선장님이 참견을 하셨다.
"낭군님. 이제 그만 접으시죠. 색시 죽이겠습니다."
그 말을 선장님이 먼저 하면 안 되는 거다. 신랑이 먼저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그가 쩝쩝 아쉬운 소리를 내며 뭉기적뭉기적 낚싯줄을 걷어 올리면서 하는 말이, "아이~ 아까워. 진짜 고기 잘 잡히는데……. 오늘 하루 렌트비 내고 아직 한 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
 
입 한번 잘못 놀리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난 아직도 가끔 신혼여행씩이나 가서 색시가 뱃속의 노란 물까지 나오도록 토악질 하는데도 낚싯줄을 놓지 못하던 남편을 기억한다. 아내의 역사책은 이 날부터 시작된 거다. 평상시에는 너그럽게 넘어가지만 가끔 빈정 상하는 날엔 숨겨진 발톱이 불쑥 올라온다.
 
 
 
  # 그 남자의 결혼 실록 제 1장
 
 신혼여행을 떠나 치부책 목록에 첫줄을 쓰게 된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에게도 앞날의 전주곡을 틀어주셨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니 바닥에서 직접 이동식 층계를 통해 탑승을 해야 했다. 우르르 탑승객들이 비행기를 찾아 오르기 시작하니 기체 문 앞에서 안내원이 일일이 좌석번호를 확인하느라 지체되었다. 우리 둘은 층계 중간에 서서 앞 뒤 사람으로 꽉 막힌 채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갑자기 그녀가 맡은 티켓 걱정이 되었다. 늘 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신부에게 맡겼을 뿐인데 여행 내내 소소히 뒷덜미를 잡을 일이 생겼었다. 비행기 타는 절차가 익숙지 않아 몇 번이나 통과할 때마다 티켓을 꺼냈으니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비행기 입구에서 주머니와 가방들을 뒤적거리면 길게 줄 선 사람에게도 민폐라 작은 소리로 물었다.
 
"비행기 표 잘 가지고 있어? 어디 있어? 금방 꺼내야하는데 잘 챙겨놓은 거지? 확인했지?"
그제야 생각난 듯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그녀가 겨우 티켓을 찾아냈다. 그러더니 자신 있게 내 눈 앞에 비행기 표 두 장을 흔들어가며 퉁박을 주었다.
"아따~ 걱정도 팔자네. 여기 있다, 여기 있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건네받으려던 내 손이 가 닿기도 전에, 티켓 두 장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제주도가 아니던가.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어 그녀의 손에서 티켓을 채간 거다.
 
"엄마야~~~"
신부의 앙칼진 비명을 들으며 나는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층계참마다 줄을 선 사람을 비집고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사실 죄송할 일도 없었다. 가뜩이나 천천히 줄어드는 줄 때문에 지루하던 참인데 동네 구경거리 하나 나셨으니 말이다. 바람은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비행기 티켓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온 사람들이 응원하는 가운데 나 혼자 비행장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땀범벅이 되고 나서야 가까스로 비행기 티켓을 거머쥐었다. 비행기 층계참에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선선한 얼굴로 웃고 있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몽롱했다. 난 그런 여자와 앞으로 일생을 살아야 하는 거다.
 
비슷한 일을 수없이 겪었을 텐데 연애 시절엔 도통 그런 게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다. 그런 일들은 그녀의 '선선함'이라는 장점으로 분류되었다. 되돌려 생각해보니 그녀가 변한 게 아니라 내 착각이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결혼식 이후에 내 눈이 제자리를 찾은 거다. 그녀의 풍성한 인심과 너그러움은 이제 대책 없음과 관리부족으로 자리매김 되어 종종 나와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그럴 때마다 신혼여행 비행장에서 티켓을 주우러 다녔던 그 장면이 생각난다. 이제 와서 후회한 들 무엇 하랴. 콩깍지가 문제였지.
 
가끔씩 우리 둘은 신혼여행 에피소드를 하나씩 챙겨 들고 칼싸움을 한다.
"내가 너 그 때 다 알아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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