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는 사춘기

[할매는 사춘기 #1] 산골소년 봉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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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2-28 21:05 조회5,2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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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는 사춘기
 
산골소년 봉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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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은 제주도 95번 서부관광도로에서 200m쯤 안쪽의 숲에 있다. 그 사이에, 주도로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농로로 쓰이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란히 2km쯤 함께 나 있다. 두 도로가 만나게 되는 곳에 소인국테마파크라는 관광지가 있고 그 대각선에 작은 초등학교가 있다.

 

  작은 소로에는 인가는 커녕 창고 하나 없이 양옆으로 무성한 솔숲이 우겨져 있고 광해악 오름(기생화산) 언저리에 감자밭이나 유채밭이 있을 뿐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이 길을 걸어가면서 정면에서 한라산을 선명하게 볼 수있고, 여기 저기 소나무 군락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지만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은 날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정경을 자아낸다. 이 길은 우리집에 묵는 손님들이 가끔 산책을 나가거나 내가 운동삼아 걷는 것 이외에는 인적조차 드문 곳이다.

 

  그런데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 봉달이는 비가 오거나 눈보라가 치는 날에도 이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닌다. 우리 내외가 오며 가며 어린 봉달이가 걸어 다니는게 안쓰러워 차에 태워 주다가 서로 안면을 트게 되었다.

 

  봉달이는 우리 동네에 사는 귀여운 소년이다. 아이는 우리집에서도 1km쯤 더 내려간 귤밭 한가운데 있는 외딴집에서 살고 있다. 가끔 과자도 주고 사탕도 주었더니 이제는 하교길에 종종 우리집에 들려서 재롱을 부려서 적적한 우리 내외를 즐겁게 해 준다. 귤농사를 짓고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와 산다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엄마 아빠는?" 하고 묻자, 한번 씨익 웃더니 종알 종알 사생활(?)을 허물없이 이야기 할 정도로 순진 무구한 어린이다.

 

" 저는요~ 부산에서 엄마 아빠랑 살았는데요. 엄마 아빠가요~ 맨날 싸우다가요~ 엄마가요~ 이모네 집에 가셨구요~ 아빠하고 나하고 엄마 찾으러 이모네 가서요~ 아빠가 술취해서 유리창을 부숴서 파출소에 갔어요. 나는요~막 울구요~ 이모두 막 울구요~ 엄마가 숨어서요~아빠가요~ 나를 웬수라고 하면서 할머니한테 데리고 왔어요~"

 

봉달이가 왜 할머니와 살게 되었는지 안봐도 선하지?

 

  이곳에서는 감자를 캔 뒤 상품 가치가 없는 것들을 버리고 그냥 가기 때문에 기운만 있으면 무진장 주워다 먹을 수 있다. 우리는 감자 이외에 콩이나 팥, 어쩌다 재수 좋으면 브로컬리나 치커리 같은 고급 채소도 몇 자루씩 주워다 먹는다. 장기간 보관이 어려운 이삭줍기지만 그걸 유심히 보신 손님은 같이 수확(?)나가 박스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어느날 수확이 끝난 감자밭에 감자를 주우러 갔다가 거기서 봉달이 할머니를 만나 함께 줍게 되었는데 우리 내외가 봉달이를 귀여워 해주어 고맙다고 하며 집안일, 농사일이 많아 봉달이를 잘 돌보지 못한다고 했다.

 

  봉달이 할머니가 봉달이 엄마에 대해 언급한 것은 봉달이가 전한 것과는 사연이 좀 다르다. '지 서방은 힘들게 일 하는데 맨날 쳐 자빠져서 잠이나 자고, 카드빚이 많아서 갚아 주면 또 빚지고, 화난 서방이 귀싸대기 몇 대 올렸더니 생떼 같은 제 새끼 버리고 나간 천하에 몹쓸 에미'란다. 감자를 주우면서 예.예하며 대꾸해드렸지만 시어머니가 하는 한 쪽 얘기만 다 믿을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봉달이가 이곳에 다섯살때 왔다니 오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한 그 '천하에 몹쓸 에미'가 오죽 그리웠을꼬? 가여운 생각에 그 뒤로는 봉달이가 좋아할만한 과자는 일부러 남기거나 아이스크림 같은 것은 따로 사다 놓았다가 안겨주기도 했다.

 

  지난번 글에서도 말했지만 우리집은 남는 방으로 조그맣게 민박을 한다. 대부분 가족여행이라서 아이들이 한 두명 끼어 있기 마련이다. 작년 여름, 봉달이 또래 나이의 소년이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오면서 우리집에서 며칠 묵고 갔었다. 서울 개포동에서 살고 있는 현수는 도시 소년답게 하얀 피부에 영양상태가 좋은 검은 머릿결이며 귀밑 머리가 귀골스러운, 잘 생긴 녀석이었다. 엄한 부모가 제대로 반듯하게 키워 인사성도 밝고 영리하고 의젓한, 한마디로 귀족 같은 녀석이었다.

 

  어쩌다보니 봉달이와 현수는 그 또래답게 그새 저희들끼리 사교(?)를 터서 어른들이 숯불 바베큐를 준비하는 마당에서 함께 뛰어 놀았다. 현수 어머니는 미인이면서도 후덕해 보이더니 고기를 구우면서 봉달이도 데려다 함께 앉혔다.그래도 봉달이는 내심 부끄럽고 미안한지 까마귀 같은 손으로 고기를 덥석 집지 못하고 어른들 눈치를 살핀다. 평소 잘 먹지 않아서 엄마 속을 썩힌다는 현수는 잘 먹는 봉달이가 함께 먹어서인지 준비한 흑돼지고기가 모자라 우리집 냉동실에 있던 돼지고기까지 다 먹고서도 더 먹으려고 해서 현수엄마를 놀라게 했다.

 

  이튿날 아침. 새벽부터 봉달이가 와서 현수네가 자는 1층 객실 현관앞에 앉아있었다. 그때가 새벽 5시쯤 되었을 것이다. 관광객들은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그 시간에 일어나지 못한다. 대부분 전날 관광다니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녀서 고단하기 때문이다. 현수를 기다리는 봉달이가 안쓰러워 우리가 아침밥을 먹을때 함께 먹이고도 한참 뒤에야 현수네가 일어났다. 두 녀석은 백년지기를 만난 듯이 환호를 지르면서 억새숲으로, 뒷산으로 몰려 다녔다.

 

  그러나 어쩌랴. 현수네는 스케쥴대로 10시가 넘자 관광하러 나갔고 봉달이는 하루종일 우리집 주변을 배회하며 현수를 기다렸다. 전날 협제 해수욕장에서 놀다온 현수의 젖은 샌달을 빨아서 현관 옆에 두고 나갔는데 봉달이가 슬쩍슬쩍 제 까마귀 같은 발을 넣어도보고 현수가 갖고 놀던 퍼즐 맞추기도 만지작 거린다. 모슬포 오일장에서 오천원이면 사는 봉달이의 먼지 낀 비닐 신발이 그렇게 촌스런 파란색인줄 나도 그때 처음 알았다.

 

" 봉달아, 현수는 오늘 롯데 호텔 화산쑈까지 보고 오니까 밤9시가 넘어야 온단다. 이제 집에 가거라."

 

  말해놓고는 아차 싶었다. 불과 10여분 거리밖에 안되는 곳에 롯데 호텔이 있지만 봉달이는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밤 8시가 넘어서 하는 화산쑈를 누가 데리고 가서 보여 주었을 것인가? 그날 밤 열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현수네가 돌아왔고 집에 간줄 알았던 봉달이가 그때까지도 우리집 담 모통이에 서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그날 현수 어머니와 나는 천진한 아이들의 우정을 이야기 하다가 봉달이 할머니댁에 전화 드려 허락을 받은 다음 봉달이와 현수를 2층의 비어있는 방에다가 함께 재웠다. 늦게까지 사내녀석들 답게 어찌나 쿵쿵대며 뛰노는지 우리 남편의 꾸중을 듣고서야 겨우 조용해졌다.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현수네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아침을 준비해놓고 이층에 올라가보니 두 녀석이 언제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현수네도 아침밥도 못 먹고 기다렸으나 감감 무소식. 현수네가 소인국 테마파크만 보고 오후 1시 비행기를 타기로 일정을 잡았기 때문에 9시가 넘자 모두가 불안해졌다. 우리 내외는 물론 봉달이네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셔서 현수네 부모님과 모두 앞산 뒷산으로 두 아이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찾아 나섰다.

 

  제주도 숲은 육지 숲과 아주 다르다. 한마디로 열대우림 정글과 비슷하다. 그런 밀림같은 숲을 통과 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넝쿨 식물이 우거져 한치 앞도 안보일 뿐더러 찔레같은 가시나무가 많아서 금방 상처투성이가 된다.

 

  이 고장 숲에 익숙한 봉달이 할아버지가 광해악 오름을 넘어가서 두 녀석을 찾아온것이 11시 쯤이었다. 이제 급히 서둘러 공항으로 곧장 가야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다. 정글을 누비고 온 두 녀석은 참으로 볼 만 했는데 아침이슬과 땀에 젖어 새앙쥐 꼴이었고 현수는 팔 다리가 성한데가 없이 긁히고 상처가 나있었다. 재롱이(이 녀석은 손님들이 어딜가든 쫓아다니는 희귀한 성격을 갖고 있다. 나중에 언급하겠다.) 라는 강아지도 함께 돌아다니다가 왔는데, 그녀석이나 애들이나 꼴이 말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들의 두 눈만은 유독 반짝거렸다. 봉달이는 어제 까마귀 발로 슬쩍 신어보던 현수 샌달을 신고 있었다.  

 

  현수 어머니가 현수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봉달이 할머니는 나무 작대기를 집어들고 봉달이를 마구 때렸다. 아마 미안하다는 나름대로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화가 나서 얼굴이 굳어져 있는 현수 아버지가 차에 시동을 걸며 출발을 서둘렀다. 매맞는 봉달이 옆에서 현수도 덩달아 우는데 가만히 보니까 무슨 까만 봉지를 들고 있었다. 현수 아버지가 와락 떠밀며 현수를 거칠게 차에 태우려 하자 현수가 들고 있던 봉지안에 있던 것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세상에!!! 그건 하얀 꿩알이었다.

 

  바닥에 쏟아지면서 반 넘어 깨졌는데 현수는 엉엉 울면서도 아직 깨지지 않은 꿩알을 주워 봉지에 도로 담았다. 그때서야 현수 아버지도 멈칫 노기를 가라 앉혔는데 그건 새벽 부터 꿩알을 주우러 다닌 어린 두 아이의 짧은 우정을 순간 가늠 했기 때문일 것이다.

 

  봉달이가 황급히 현수 샌달을 벗어 차에 던지자 렌트카는 출발했고 떠나는 승용차 뒷 창문으로 현수가 울면서 손을 흔든다. 봉달이는 할아버지한테까지 몇 대 더 쥐어박히고 한참이 지나서야 울음을 멈추었다. 울어서 딸국질을 하면서, 돌담에 기대 앉아 현수가 주고간 퍼즐 맞추기를 하고있다. 그런 봉달이를 보고있자니 빈 속에 소주 한 잔 마신 것 같이 짜르르한 기분이다.

 

  그래...그래도 아직 우리가 살 맛이 남아있구나.

  어린 너희들이 이렇게 곱고 아름다우니까!!!

 

  다음날 현수 어머니 한테 전화가 왔다. 현수가 숲에서 무슨 사고가 난줄 알고 놀라 화를 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왔노라고. 봉달이 마음에 상처가 없기를 바라면서 샌달 하나를 사 보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묻는다. " 근데요. 그 꿩알이 모두 15개나 되더라구요. 그걸 어쩌죠?"

 

  나는 얼른 대답 했다. " 삶아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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