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는 사춘기

[할매는 사춘기 #2] 결혼식 날 아침, 사라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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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2-28 21:05 조회5,5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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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는 사춘기
 
결혼식 날 아침, 사라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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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 날 아침..

   신부화장을 하러 간 신부는 그 길로 비행기를 타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육지를 향해 평생 살아온 섬을 떠났다.

   아직은 풋풋하고 검은 눈이 맑게 빛나던 섬처녀. 명화.
 
   그녀는 언제 다시 고향에 돌아 올 수 있을까?
 
우리집은 해발 200 m정도로 높은 위치해 있어서 테라스에서 보면 남해와 서해 바다가 보인다. 맑은 날에는 마라도에 부딪히는 파도의 흰 포말이 보일 때도 있다.

우리집 너머로 전형적인 제주도 농촌마을이 이십여가구가 있는데 주로 감자나 귤 농사를 짓는다. 나는 모계쪽으로 당뇨병이 유전 되는데다가 먹을 것을 항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뚱땡이여서, 늘 체중과의 싸움을 하며 사는 터라(항상 지는 편이지만..) 집 뒷산을 넘어 마을 입구까지 자주 운동삼아 걸어다니곤 한다.

마을에는 잘 정리된 귤밭 사이로 가끔 새 건물도 있지만, 대개는 옛날 집을 손을 봐 사는 정도여서 가난 하달 수는 없어도 부촌이라는 인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마을 끝 자락 언덕위로 돌아가면 막다른 골목처럼 생긴 구석에 제주의 그 흔한 돌담도 허물어진 오두막이 한 채 있다. 잘 연상이 안된다면 '집으로..'라는 영화에 나오는 할머니 집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작년에 애들이 취미로 사진을 찍어보라며 남편에게 디카를 선물해줬었다.
   처음엔 별로 관심이 없더니 요즘에 곧잘 찍길래 명화네 집을 한번 찍어달라했더니 냉큼 찍어다 준다.
   바로 요 집이다.

 비록 집은 낡고 허물어졌어도 눈에 확 들어오는 것. 그것은 다섯평도 안되는 마당에 흐드러지게 잘 가꾸어진 꽃밭이다. 이렇게 낡은 집에 저렿게 잘 가꾸어진 꽃밭이라니!! 그 선연함이 귀기 스럽기조차 했다.

운동을 하면서 여러번 다니다보니 자연히 알게 되었는데 중학생인 소년과 몸이 불편한 (장애와 지병을 함께 갖고 있는) 어머니가 제주시에서 작은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는 딸과 살고 있다고 했다. 주말이 되어야 집에 오는 딸이 그 찬란한 꽃밭을 가꾼다고 해서 속으로 놀라기조차 했다.

우리집이 민박을 하다보니 라면이나 술. 음료수 따위가 남게 된다. 대부분 비행기를 타고 귀가 하면서까지 남는 라면이나 술을 가지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맥주정도는 방 정리를 하면서 내가 신나게 마시지만 라면은, 특히 사발면같은 것은 우리 노부부가 즐기지 않는터라 한 보따리씩 모아지면 갖다 주게 되었는데 아픈 몸으로 품팔이를 하는 어머니를 보아 생활이 어럽다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가끔 자전거를 타고 하교길에서 만나게 되는 동생이 말없이 그러나 살풋이 눈 인사를 하고 지나 가기도 했다.
 
 
   어린 신부, 명화

 재 작년 봄이었던가?
연두색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소롯길로 오길래 고개를 빼어 눈 마중을 해보았다. 민박 손님은 '허'자 번호판을 단 차를 타고 들어오지 원피스를 입고 걸어 오는 일이 없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 왔을때 화들짝 놀랐다. 연두색 원피스 때문인가? 그 날이 마침 나른한 봄날이어서인가?

빼어난 미인 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고운 피부에 조목조목 귀염성이 있고 웃음이 가득 배어있으며 검은 눈망울이 천진하게 빛나는.. 한마디로 봄 나비 같았다. 여리고 예쁜 봄 나비.

그 아가씨가 명화 였다.

  " 아주망, 육지는 무사 이크럼 넒음수꽈?" (아주머니, 육지는 어떻게 그렇게 넓나요?)
  " 전철타고 바당으로 갈 수 있수다게?" (전철 타고서 바다까지 갈 수 있나요?)
  "기차는 구부러져감시 무사 어퍼지지 않음수꽈?" (기차가 코너를 돌때 어떻게 안넘어지고 갈 수 있죠?)

이것은 삼십년 전이 아니라 바로 일년전 명화가 내게 묻던 말이다.

이 고장에서 태어나 한번도 섬을 나가 본적이 없는 명화.
아버지는 농약 중독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시집가서 아주 어렵게 사는 언니 하나가 있다고 했다. 가난해서 여고를 중퇴하고 철들기 전부터 어린 남동생 업고 학교도 가고 밥도 짓고 가끔 갯바위에서 보말(소라의 일종)도 따고......

그렇게 가난한 집, 섬 계집아이가 자라서 지금은 제주시 신발 판매장에서 일하며 남동생 공부를 가르친다는 명화는 그렇게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그녀가 가꾸는 찬란한 꽃밭처럼 어찌 그리 밝고도 예쁜지. 우리 말고도 동네 어른들이 칭찬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작년 장마 무렵 명화네 꽃밭에 피어난 수국이 잉크색이어서 신기해 했더니 며칠뒤에 분가해 갖고와 우리집 입구에 심어주기도 했는데 올해도 장마가 지려니까 보라빛 봉오리를 열며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 하려 한다.

그런데 비극이 시작 되었다.
갑작스럽게 명화어머니가 쓰러지셨고 악성암 이라고 했다.

아무 대책도 없이 퇴원하여 긴 여름날 마른 몸피로 마루에 앉아 먼 산 바라기 하는걸 보고 괜히 죄송스러워 피해 간 적도 있었다. 결국 입원을 해도 특별한 치료를 할 수 없는 가난한 처지가 아니던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소년이 굶지 않도록 가끔씩 소년이 학교에 간 사이 아무도 없는 부엌에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것 뿐이었다.
 
 
   새 신랑 버렝이

 명화네 집 뜰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 집에서보다도 바다가 많이 보인다. 드믄 드믄 해송이 자라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억새만이 물결치는 황량한 바닷가. 파도의 물결 무늬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 하다.

그 바닷가 한쪽 귀퉁이 찌그러진 오막살이.
왜 이런 노래가 생각나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그 집에 버렝이 총각이 홀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 집 터 주변은 바람이 심해 아무 농사도 지을 수 없으므로 두 부자는 아마 바다에 생명줄을 잇고 사는 듯 했다. 들리는 얘기로는 몇 대째 거기 그 자리에 그렇게 살았단다.

새 신랑감은 여기서 버렝이 총각이라고 불리우는데 제주도에서 버렝이란 벌레, 지렁이, 굼벵이, 지네 등 뭐 그런 꿈틀 거리는 것을 지칭 한다. 그 총각이 왜 버렝이 총각이라고 통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 집도 버렝이네 집 이라고 불린단다.

포구에서 잡아오는 계절따라 그때 그때 다른 생선으로 조림도 하고 회도 뜨고 낚시꾼을 위해 라면이나 소주도 판다. 저녁 노을이 아름다울 때 버렝이네 집에 가서 따치 회 한접시와 소주를 마시고 클레멘타인 노래를 가만 가만 불러 본적도 있다. 손님을 받을 한칸 방 한개와 마루옆 뜰팡에 탁자 한개 놓은 것이 전부여서 먼저 온 손님이 있으면 홀아비 냄새가 진동하는 부자가 쓰는 안방에서 먹어야 한다.

버렝이 아버지는 언제나 집 모퉁이 억새밭속에서 어망을 손질하며 검게 그을은 늙은 어부의 모습으로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아 벙어리인줄 알 정도이다. 그날 잡은 고기가 있으면 팔고 없으면 안판다.

서른 다섯을 넘겼다는 버렝이 총각은 눈매가 유순 하여서인지 나이도 어려 보이고 욕심 없이 사는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 나와 남편은 아주 가끔씩 들려서 소주도 권하고 농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투박한 접시에 떠 놓는 회 맛도 좋지만 생선 조림 솜씨가 아주 좋다.
 
 
   결혼식날 아침, 도망간 신부

 바닷가 주변을 정리 한다는 관광특구정책에 따라 버렝이네 집과 그 주변에 얼마 안되는 땅을 군청에서 사들였다. 보상으로 삼억인가를 받는다고 동네 할망들이 수근 거렸다. 이제 버렝이네는 삼년안에 이사를 해야하고 그 주변은 철거 될것이다.

동네 누군가가 중매를 섰다던가? 명화와 버렝이 총각이 결혼할거라고 소문이 자자 했다. 명화 어머니는 상점을 그만둔 딸의 간병을 받으며 몇달 입원 한채로 병원에 계셨고 명화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집에 와서 동생 먹을 것도 준비 하고 마당의 꽃밭도 열심히 손질 하고 갔다.

어떤때는 여전히 예쁜 모습으로 우리집에 들려서 밝게 웃었지만 눈가의 어두운 근심마저 다 감추지는 못했다. 더러 책도 빌려가고는 했는데 우리집 책장에 아직도 꼽혀있는 육지 교통지도를 유심히 보면서 우리나라 땅의 크기를 가늠해보곤 했다. 지하로 다니는 전철과 기차에 대해서 아주 궁금해 했는데 특히 전철에 대해서는 신기해 하면서도 잘 이해 하지 못했다. 예비 사위 버렝이 총각이 병든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명화 뒤를 봐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작은읍에 면사무소, 보건소, 파출소도 있는데 그곳에 가면 한개 밖에 없는 예식장도 있다. 작년 늦가을, 예의 고운 웃음을 머금고 명화가 결혼날자를 알리며 우리집에 들렸을때 맛사지 크림 한통을 주며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다.

결혼식날 아침. 봉투에 삼만원을 넣고 12시에 맞추어 나갈 준비를 하는데 동네 확성기에서 잡음이 섞인 이장님 목소리가 귀가 째질 듯 들렸다.

  "버렝이 하고 명화 결혼식 오지 맙서!! 오늘 혼례 안 하우다. 동니 사람들 오지 맙서!"

느닷없이 확성기에서 되풀이 되는 째지는 소리! 그때가 11시 였다.

신부 화장을 하러 제주시로 아침 일찍 나간 명화는 그 길로 비행기를 타고 평생 살았던 제주도를 떠났다.

명화가 떠난 후 두달을 못 넘기고 명화 어머니는 병원에서 쓸쓸히 돌아가셨으며 명화는 오지 않았다. 명화가 귀애하던 동생은 성산읍에 사는 큰 누이가 데리고 갔다고 한다.

버렝이 총각은 아직도 그 집에서 홀아버지와 산다. 그동안 명화 어머니 병원비며 이것저것 명화네 빚도 갚아 주어 적잖은 돈이 축이 났다고 했다. 지난 겨울 햇살 따사로운 날 남편과 둘이 매운 찌개에 소주를 마시며 눈길을 피하려던 것이 오히려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새 버렝이총각 얼굴이 아주 못쓰게 망가져 있었다.

바다를 향해 앉아 담배를 피는 뒷 모습이..
바람에 그의 부스스한 머리가 흩날릴때 내 눈에 잠깐 물기가 맺혔다.

운동길에 보게 되는 명화네 집은 잡초가 뒤엉켜 엉망이었고 소리만 크게 질러도 쓰러 질듯이 흉흉하게 서있다. 그녀가 아끼고 사랑하며 가꾸던 꽃밭은 망가지고 지붕 위에 풀이났으며 기둥이며 문짝에 곰팡이가 피어으시시 해도 그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푸른 바다는 여전이 눈부시게 찬란하고 거기 작은 오막살이 버렝이네 집이 가물 가물 보인다.

명화는 이제 기어이 전철을 타 보았을까?
명화는 언제 다시 고향인 섬으로 돌아 올 수 있을까?

나그네여!
아름다운 제주에 와서 피빛 노을을 보며 버렝이네 집에서 객주리 찌개에 소주 한 잔 마셔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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