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는 사춘기

[할매는 사춘기 #3] 백만인의 조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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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3-28 12:23 조회5,6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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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는 사춘기
 
백만인의 조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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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 속에서 살다가 우연찮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남다르게 산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이 다음 존재 하지 않게 된 후에도 애틋한 마음으로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남편의 은퇴 후 그 동안 정들었던 이웃들과 작별하고 자연속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제주도로 훌쩍 떠나왔었다. 이렇게 먼 곳에서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영웅도 아니고 위인이 아니어도 우리 이웃에 그런 애틋한 사람이 함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우리들의 추억 속에서 남아있을 그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본다.

 

   백만인의 조오빠. 그를 기억하며.
  
 
 

1g-s.gif뚱뚱하고 호방한 동네 아저씨

 

그분을 모두 ‘조 오빠’라고 부른다. 우리 동네에는 삼대가 함께 사는 집도 있었는데 초등학교 손녀딸, 서른이 훨씬 넘은 며느리, 환갑인 시어머니와 그 댁 영감님도 모두 그 분을 조 오빠라고 부른다. 처음 며느리가 동네 아저씨를 보고 ‘조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깐깐한 시어머니가 상스럽다고 며느리를 꾸짖었는데 머지않아 그 시어머님도 ‘조 오빠’라고 부르면서 가까워 지셨으니 오빠라는 칭호는 촌수와 아무 관계도 없는 단어가 된 것이다.

 

그 동네에서는 모두 그 분을 ‘조 오빠’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분의 별명이 ‘백만인의 조 오빠’이다.

 

조 오빠는 개그맨 뺨칠 정도로 사람 웃기기를 잘한다. 특기나 장기도 많아서 예를 들면 시골 장터 약장사,떡장사,엿장사 흉내는 물론이고 웬만한 굿거리나 신파극도 뚜르르 한마디씩 엮어대면 웃다가 뒤로 안 넘어갈 사람이 없다.

 

노래 솜씨 또한 그야 물론이다. 베사메무쵸, 뜨거운 안녕 같은 노래를 불렀다 하면 저절로 ‘오빠!!!!죽여줘!!!’를 외쳐대게 된다. 본인 말로는 홍성 장터 노래자랑에서 양은 솥단지를 상품으로 탄 적도 있다고 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떤 모임에서든지 그분이 사회를 보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 결속이 잘 안되어서 해체되기 직전인 단체도 단합이 되기 시작한다. 아파트 반모임, 종교 단체 모임, 향우회나 군대 동기, 심지어 가난한 집 초상조차도 그분이 앞장서면 주변에서 일등 모임이 된다.

 

 

 

2g-s.gif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의 벗

 

그 분은 누가 부르지 않아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 곁에 항상 달려간다.
대포 한잔 못 얻어먹으면서도 남이 부탁하는 어려운 일을 거절 하는 법이 없다.

 

그분이 몰고 다니는 차에는 언제나 병원 가는 할머니, 무거운 것을 들고 역에 가는 애기 엄마, 하릴없이 공원 나가시는 늙은 할아버지, 몸이 불편한 어린 학생들이 항상 태워져 있다.

 

동네에 무슨 얘기만 나오면 시비를 거시는 성질 괴팍한 노인이 계셨는데, 모두 피해 다니는 그 노인을 오로지 조 오빠만이 불평을 참고 들어주며 상대해 드린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차가 도랑에 빠졌을 때.
한밤중 애가 아플 때.
노환의 할머니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쉴 때.
아이가 대학에 떨어졌을 때.
죽도록 미운 사람이 생겼을 때.
계돈을 떼이거나. 군대간 아들놈이 사고를 쳤을 때.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고 환장할 때.
가난한 친정 때문에 가슴앓이를 할 때.
시댁의 부당한 대우에 서러울 때

 

그럴 때는 일단 조 오빠부터 찾아야 한다.

 

 

 

3g-s.gif매력적인 남자

 

조오빠는 한국 남자표준보다 키가 작고 뚱뚱하다. 심지어 털보이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조오빠는 아주 매력적이다.

 

그 몸매에도 양복이 제법 잘 어울려서 제대로 차려 입고 나서면 돈 푼 깨나 벌어 놓았음직해 보인다. 그러나 청바지에 모자라도 눌러쓰면 반대로 아주 성질 고약한 늙은 깡패로도 보인다.

 

조 오빠는 성장기를 충남 홍성에서 보냈는데 젊은 날 해군에 지원 입대하여 복무 중 첫 휴가를 나와서 홍성시장을 주름잡는 건달들과 시비가 붙자 모조리 두들겨 패고 귀대하지 않아서 탈영병이 됐단다. 건달들의 행패에 시달리던 여러 사람들은 앓던 이 빠지듯 후련하게 여겼다 하고. 조 오빠의 무용담은 지금도 그 고장의 전설처럼 남아 있다고 한다.

 

그를 아끼는 벗들의 도움으로 일 년의 도피 생활 뒤 탈영병 자수기간에 자수하여, 육군에 재입대해서 최전방 소총수로 겁나게 고생하고 병장제대 했다. 겁나게 고생한 소총수 시절 얘기는 해도 절대로 해군이야기는 하지 않는다.그렇게 장난스럽고 잘 웃는 그 분에게도 농담 하고 싶지 않았던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할 뿐이다.

 

그 분은 성당에 다니셨는데 어리고 사과 같은 수녀님도 “조 오빠님”, 아주 고령의 신부님들도 그를 부를 때면 “이봐! 조 오빠!!”라고 부른다.

 

선천적 유전에 의한 간염이 간경화가 되여 오랜 투병도 하셨는데 요양이 필요한 지경에 까지 병세가 나빠져서 계룡산 신원사 밑에 계신적이 있다. 그를 보려고 오는 이가 하도 많아 주말이면 절 입구까지 차가 줄을 잇기도 했단다.

 

지금도 그렇지만 계룡산은, 특히 신원사 주변은 약간 신 들린 분, 그러니까 고상하게 얘기하면 남다른 정신세계를 갖은 분들이 00교 집단으로 군락을 이룬 곳인데 신원사 스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00교 교주라는 고려시대 궁중의상 같은걸 입으신 분도 “조 오빠님”하시는가 하면 박수무당이나 맹인 점장이도 “조오빠님”라고 부르며 내왕하셨다.

 

어떻게 그리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

 

술은 한잔도 못하는 체질이어서 맥소롱 한 병에도 금방 얼굴이 붉어지는데 밤새 노는 술꾼들 옆에서 새벽까지 자리 지키고 술꾼들 뒷갈망까지 하신다.

 

 

 

dot1.gif에피소드 하나.

 

아파트 입구에 사시는 정숙이 할머니는 어느 날 쓰러지셔서 병원에 다녀오신 뒤 속된말로 맛이 약간 가셨다. 그러니까 가벼운 치매에 걸리신 것이다.

 

정숙이 할머니는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인 느티나무 평상에서 하릴없이 앉아계시다 지나가는 사람 중 유독 조 오빠는 알아보고 앙탈을 부리거나 떼를 쓰셨다.

 

“조 오빠, 나점 운일암 반일암(대전에서 금산을 지나 전주 가는 곳에 있는 산골 마을 정천)데따줘..”

 

아들 내외는 기사식당을 하는 터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고 공부하는 애들도 많아 운일암 반일암 타령하는 할머니 소원을 들어주기 어렵다. 어릴 때 그곳에 살다가 시집오셨다더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엉켜버린 할머니는 꼭 출퇴근하는 조오빠를 놓치지 않고 보챘다.

 

그리고 벚꽃이 후두둑 눈발같이 날리는 어느날,
조 오빠는 정말로 할머니를 태우고 봄나들이를 갔다.

 

출발하면서 “할머니!! 우리 지금 운일암 반일암 갑니다!!”라고 소리치더니 “할머니, 여기가 마전이에요” “지금 금산 지나요” 일러드린다. 할머니는 차창 밖을 보며 “그려 그려~”하면서 아시는 척 하셨지만....

 

사실 이들이 가고 있는 곳은 운일암 반일암이 아닌 대청댐이었다.

 

대청댐에 도착해서 꽃그늘 아래 한 자락 풀밭에 도시락을 펼치는데 “여가 어디여?”하고 할머니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 정신에도 어쩐지 낯설은 풍경이었겠지. 조 오빠는 할머니 손을 잡고 푸른 물이 넘실대는 대청댐 밑 공원 안의 커다란 정원석 두개를 가리키며 “이게 운일암이고 저건 반일암예요” 한다.

 

“뭐여..? 아니 그렇게 큰 바위들이 우째 이리 쪼고매졌대?”
“어이구, 옛날 옛적 가마타고 정천에서 시집오던 이쁜 각시가 이렇게 늙었는데 바우는 안 닳남유..?”
“허긴 글타. 그때는 맑은 개울창 밖에 없었는디..물이 겁나게 많네그려..그래도 이리 와 보니 왜이리 좋노..”

 

우리는 뒤에서 박장대소 했지만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병들고 늙은 할머니, 가난한 자식들.

비몽사몽에도 유년시절을 그리워하는 할머니를 비록 정천까진 모시지는 못했어도 대청댐 앞에서 한을 풀어드렸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그 뒤 할머니의 아들이 허리 굽혀 치하했지만 차마 모시고 간곳이 대청댐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그 할머니는 소원이던 운일암 반일암을 가보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

 

 

 

dot1.gif에피소드 둘.

 

조 오빠의 부인되는 현미언니와 나는 친자매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다.

 

어느 날 언니네가 부부싸움을 했고 둘이 홧김에 맥주한잔 하려고 가끔 다니던 치킨집에 갔다. 그러나 이른 오후여서 그랬는지 아직 개시 전이었다. 도로 옆 슈퍼마켓의 파라솔 아래엔 아저씨들 서 너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지만 나이 50이 넘었어도 대낮에 길가에서 술을 마시기는 부끄러웠다. 이리저리 골목을 기웃거리다가 닭내장,소주,막걸리 따위를 삐뚤빼뚤 써놓은 광목 포장집을 발견, 다짜고짜 언니 손을 꽉 잡고 들어갔다.

 

실내 테이블에 아저씨들이 앉아 있길래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 맥주를 시켰다. 조금 지나니 술청에 앉아있던 노파가 개다리 소반에 술상을 봐 온다. 차려온 개다리 소반에 땅콩 한 봉지가 있었는데 아악.. 찌들고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휘휘 둘러보니 우리가 자리잡은 곳은 노파가 살림을 하고 있는 작고 궁상스런 방이었다. 밖에 있는 아저씨들과 할아버지들은 막걸리를 마시는데 술청위에 풋고추와 된장, 김치뚝배기가 있을 뿐, 안주는 아무도 먹지 않는다. 막걸리를 반만 먹고 반은 맡기고 가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가게 밖으로 비쭉이 고물장사 리어카가 보인다. 쓰레기 치우는 아저씨, 짐꾼, 엿장사... 그런가난한 남자들이 우리가 커피 한 잔 마시듯 막소주를 맥주컵으로 한잔 쭉 들이키거나 막걸리를 마시는 집이었다.

 

언니와 나는 궁리 끝에 가장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계란 후라이를 한 접시 해달라고 노파에게 부탁했다. 그래도 우리가 여자라고 밖의 아저씨들이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며 그중 할아버지 한분은 “이 동네 안 살쥬?” 하며 작업 멘트도 날린다.

 

후라이 5개 한 접시에 2천 원.

 

우리는 그 뒤 “계란 후라이 먹을래”를 암호로 종종 맥주를 마시러 그곳에 들려 소위 단골이 되었다. 탁자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아저씨가 우리를 힐끔거리면 할머니가 소리를 꽥 지르며 방문을 닫는다.

 

“쳐다보지 마! 즘잖은 귀부인들여!”

 

어느 날 또 부부싸움을 했고, 그때는 제법 얼큰하게 맥주가 5병도 넘게 마셔가며 떠들었다. 사네, 못사네, 집에 가자, 못 간다.. 뭐 그렇게 떠들었겠지.

 

어둑어둑 해지자 제법 탁자에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술 손님이 들어차고 우리는 귀부인답게 행동하느라 목소리를 낮췄다.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가서 저녁때가 되어도 소식은 없고 마침 모임도 있고 해서 남편들이 우리를 찾아나섰나 보다. 조 오빠는 우리가 그간 떠들었던 얘기 중 짐작이 가는 곳이 있었기 때문일까, 내 남편은 차에 두고 홀자 그 집을 찾아온 거다. 알따리하게 취해서 떠들고 있는데 포장이 젖혀지며 들어오는 검은 양복의 풍채좋은 신사. 우리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새 거기서 술 마시던 남루한 손님들도 다 쳐다본다. 정중하게 방문앞에 섰다.

 

“사모님, 다섯 장으로 쇼부를 봤습니다. 이젠 결정하시지요.”

“아. 네! 네.”

 

이게 무슨 소리야? 어리둥절한 내 귀에 이어지는 소리.

 

“아 오억이면 거저 얻은겁니다. 사모님들 운이 좋으신거지요. 차는 밖에 대기시켰으니 이런데서 몸상하지 말고 자리 옮기시지요.”

 

세상에나 기가 막혀. 우우..우리가 무슨 오억을? 뭐가 어째? 미처 대꾸 할 말도 찾기 전에 조 오빠가 정중하게 할머니를 향해 인사한다.

 

“여기 계란 후라이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오늘 사모님들이 돈을 버셨으니 제가 한턱 쓰지요.” 하면서 이 만원을 꺼내 술청에 놓는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계란 후라이 드리십시오.”

 

글쎄 이 즘잖은 귀부인(?)들은 그 후론 다시 거길 못 갔다. 부끄럽잖아..으흐흑.

 

 

 

dot1.gif 에피소드 셋.

 

무주 가는 길목에 있는 강가로 낚시를 갔다.

 

낚시 좋아하는 남편들이 서둘러 큰소리를 치기에 잡은 물고기로 찌게와 튀김을 해먹기로 하고 그것에 필요한 양념과 김치만 챙겨갔다. 아침부터 강물에 들어가 견지낚시를 하는데 오후 두시가 되어도 열명이 먹기엔 턱없이 부족한 다섯 마리 정도밖에 잡히지 않는다.

 

여자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고 그때까지 다슬기만 잡으며 빈둥대던 조 오빠가 돌다리를 건너 반대편 강가로 간다. 그쪽에는 큰 어망을 갖고 온 사람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 뚱뚱한 조 오빠가 허리에까지 물에 잠겨가며 한참을 그분들과 고기를 잡는가 싶더니 별안간 우리에게 손짓을 하며 빨리 오라고 했다. 내 귀에도 똑똑히 들린다.

 

“빨리 여기로 바께스 갖고와.” 스리슬쩍 거기 가서 인사 트고 도와주는 척 하다가 어망을 빌려 물고기를 한번 잡아보고 싶다고 했다나? 한번이 뭐냐? 커다란 바께스가 넘치도록 잡아와서 튀김이며 매운탕이며 배부르게 먹고도 남아 바위에 말린 생선까지 챙겨왔으니까. 사람 사귀는데는 귀재였다.

 

 

 

dot1.gif에피소드 넷.

 

부부동반으로 부곡하와이라는 온천에 갔을때다. 미리 예약한 숙소에 가자마자부터 나이트 삐끼하는 앳된 머시매들이 명함을 들고 계속 방문을 노크한다. “사모님, 연구단지 박사님도 계시고요, 사업하시는 사장님, 기관에 계신 높은 어르신도 계십니다. 놀러오세요.”

 

참고로 지금까지 중년나이트에 가서 박사님 얘기를 안들은 적이 없으니, 중년부인들이 그토록 박사를 좋아한다는 얘길까? 박사님이 엄마들이 만원씩 걷어 놀러가는 곳인 중년나이트에 맨날 짱박혀 계시단 말인가?

 

온천에 다녀온 남편들이 자기들은 고스톱을 칠테니 우리더러 나이트가서 놀다오라고 하며 조 오빠가 거금을 주신다. 우리는 순간 ‘그래, 바로 이때야’라는 눈빛을 나누었다. 현미언니는 “난 피곤해서 안가고 싶어”하는 고도의 지능적인 수법까지 동원해가며 숙소 일층 화장실에서 화장발도 올리고 향수도 뿌리고 여자 다섯이 나이트에 들어갔다.

 

말이 나이트지 관광지의 그냥 시끄러운 술집. 습하고 퀴퀴하고 싸구려 조명이 빙빙 돌아가는 곳. 새타령이나 현철오빠 노래가 섹소폰으로 연주되는 곳. 수많은 남녀들이 고무신은 고무신끼리, 짚신은 짚신끼리 앉아 있었다. 슬프게도 그중 우리가 제일 시든꽃이어서....그런데 부킹섭외가 오는게 아닌가? 다행히 연구단지 박사님은 아니고 기똥찬 사장님들이라는데..

 

으아악.
웨이터가 데려온 부킹손님은......
우리들의 남편이었다.
그 창피스러움을 어찌 말로 다 하랴.

 

근데 알고보니 그게 다 조 오빠가 만든 함정이었다. 집에 귀가해서도 한참동안 여자들끼리 다투었는데 각자 자기남편한테 저는 부킹 안하려고 했는데 억지로 한거라고 했다는군..? 나야 물론 주범에 속하니까 입 다물고 근신했지.

 

 

 

조 오빠와 교분이 있는 사람 중에는 유독 여자들이 많다.

 

여자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은 사실 부인인 현미언니 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당혹스런 일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품위 있게 자란 인물 좋은 언니였어도 시도 때도 없이 조 오빠를 찾아대는 여자들 전화 따위, 혹은 장갑이나 머플러 같은 선물을 받고 들어오는 남편에 대해 마냥 관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자들의 직업이나 수준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조 오빠가 지병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셨어도 늘 우리를 웃겨주어서 사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간경화가 심해져서 입원하신 뒤 다른 친구들과 병문안을 갔었는데 그때도 우스개 소리를 하셔서 현미언니의 심각한 각오에 대해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내손을 잡고 조 오빠가 그랬다.

 

“나는 가만 생각해보니까 현충일 날 죽는게 좋을 것 같애. 수백만명이 다 기립조의로 묵념을 하잖아. 내가 거기 슬쩍 끼면 돼.”

“내가 말야.. 저승에 가면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꼭 동생에게 가서 저승이 어떤 곳인지 얘기 해 줄께. 진짜야. 나 알지?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병문안을 하고 온지 얼마 안 되어 조 오빠가 운명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날은 진짜 현충일이 었다.

나는 울다가 웃다가 했다.

 

“이제 진짜 백만인의 조 오빠가 되었네요.”

 

병원 장례식장에서 조 오빠의 그간의 인간관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조문오신 분들을 보며 그분의 대단한 실력에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검은 정장을 우아하게 입으신 교양 있는 사모님부터, 머릿기름 발라 매끈하게 빗어넘기고 개량한복 입고 멋을 냈어도 나는 무당이나 기생이요. 라고 써붙인거나 다름없어 보이는 여자들. 여든이 넘은 연세에 지팡이를 짚어가며 오신 꼬부랑 할머니. 이제 대학을 갓 졸업했을법한 어린 아가씨. 교복입은 여고생들.

 

검은 베일을 쓴 수녀님들, 후덕해 보이는 늙은 비구니나 젊은 여승, 변두리 카바레에 들락거릴 것 같은 분위기의 그렇고 그런 사십 넘은 여자들..

 

우리 사는 지역에서 목에 힘주고 사는 유명 여성인사. 너무나 우아하고 세련된 나머지 정말 연꽃 같았던 연꽃보살이라는 분. 형님들이 일찍 돌아가셔서 홀로 남은 조오빠의 늙은 형수님들. 조 오빠가 돌아가셨을 때 담당의사도 여의사였으니 대단한 실력가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전혀 공통점이 없는 여자들이 모두 조문하며 조 오빠~라고 하는데 모두들 아쉬워하며 심지어 대성통곡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분의 가장 가까운 여동생들이 우리라고 믿고 있는 우리들도 경악했다. 첩이 첩 꼴 못 본다고 우리 팀의 막내는 적의를 품고 조문오신 여자들을 노려보기도 했다.

 

운구가 떠나는 날, 울었다.
소리내어 우는 여자들이 많았음으로 크게 울지는 않았다.

 

내가 조 오빠를 좋아한 것 같이 그분들도 그랬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이 어려움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조언해주고 다독거렸으므로 모두 조 오빠 하며 따랐으니 그 많은 여자들을 다 남성편력 혹은 바람 차원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본인이 원하셨던 대로 화장을 한 후 납골당에 모셨다. 삼오제날 납골당에서 약식제례를 올리는데 불과 이틀 사이에 새로 들어온 유골함들이 많았다. 납골당 가로세로 층층히 쌓인 유골함 앞에는 고인의 간단한 인적사항이 적혀있는데 조 오빠의 유골함 위아래 양 옆은 모두 여성들의 것이었다. 목이 메어 울다가 아들며느리, 나도 순간적으로 쿡쿡 웃었다.

 

현미언니가 울면서 이랬던 것이다.

“저승에 가서까지 여복도 많지. 새로 이쁜 언니들이 많이 와서 안 심심하겠수.”

 

 

그렇게 가셨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 오빠가 가심으로서 우리들의 청춘도 막이 내렸다. 돌이켜보면 오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어찌 그리 밝고 진솔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조 오빠가 돌아가신 뒤 자기들이 진짜 여동생이라고 믿는 여자들이 모여 “예비군”이라고 이름 짓고 일년에 두 번 정기 모임을 갖는다. 나는 나대로 내가 제일 조 오빠와 가까웠던 동생이었을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저승에 간 조 오빠가 내게 꼭 한번만이라도 와서 저세상 얘기를 해준다고 했던 약속도 믿는다. 어떻게 일러주시려는가? 떠놓은 세숫대야 물 위에 비쳐질 것인가? 쌀독의 쌀알이 요상하게 흩어진 모양으로 암시를 주실 것인가? 갑자기 새가 푸드득거리며 날아와 말을 걸을 것인가? 늘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꿈조차 꾸워본적 없으니 거기 그 저승이라는 데가 정말 한번 가면 아무리 수단 좋은 이도 영영 못오는 곳이 맞는 것 같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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