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는 사춘기

[할매는 사춘기 #4] 미로

페이지 정보

작성일14-04-21 17:28 조회4,889회 댓글0건

본문

할매의 사춘기
미로

힐빙스토리
슈리슈바

 

 

시작 

 

 우뚝 서있는 산 아래에 등산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산길을 4키로 이상 올라오면서 내심 불안했던 마음이 가신다. 공터 에는 너댓대의 자동차가 주차 되어있고 그 사이로 바리메 오름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메모한 쪽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바리메 오름을 지나 절이 있고 절을 지나 직진한 후 다시 우회전이라고 써있다. 어젯밤 인터넷으로 여러번 검색을 하고 가는 길을 꼼꼼하게 적어왔으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가에 대한 정보는 찾지 못했다.

 

 너른 목장가운데로 곧게 올라갔다. 바리메 오름을 한참 지났으니 이쯤에서 절이 나올 때가 되었을텐데 아직도 멀었을까. 1117번 도로에서 꺽은 후 10키로는 들어왔으니 생각보다 꽤 먼 길이었던 것이다. 목장이 끝나고 빽빽한 삼나무 숲을 지나자 연흥사라는 절 간판이 보였다. 간판 옆으로 절로 들어가는 작은 소로가 있다.

 거기서 망설이다 차를 세웠다. 보기에도 질퍽하고 미끄러운 것이 응달에는 잔설도 제법 남아 있어서였다. 

 

 초행길이어서 위쪽에 차를 돌릴 장소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다 한들 내 운전 솜씨로 그게 가능할지. 위로 올라갈수록 빙판이라면 속수무책일터이니 차라리 여기서부터 걷는게 나을성 싶었다. 왕복세시간 거리라면 그까잇거 별거 아니지 않은가. 트렁크에서 등산화를 꺼내 신고 작은 배낭을 울러멨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시계를 보니 열한시였다. 자동차 하나쯤은 넉넉하게 드나들만한 넓직한 길을 걸었다. 

 

 발밑에서 서릿발이 와사삭 부서지고 군데군데 희끗한 눈들이 수북하다. 얼마쯤 걸었을까.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이 방향에서 바꾸어야 하는지 조금 더 가야 하는지 애매한 마음으로 살펴보니 빈 생수병을 나무에 매달아 놓은 표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안도감에 본격적인 산행의 즐거움이 온몸으로 기쁘게 퍼진다. 비가 오면 제법 큰 물길이지 싶은 개울을 지나면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날씨는 쌀쌀하지만 바람이 없어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참 씨근거리며 올라가다가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만났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예닐곱명 내려가며 떠드는 소리로 산이 우렁우렁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혼자 하는 일과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을 명료하게 구분해 놓고 있다. 그중에서 산에 가는 일이나 영화보기는 혼자서만 한다. 혼자라야만 자신의 내면으로 더 잘 들어갈 수 있다. 누군가 함께라면 여행이나 등산보다 사람에게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을 피하거나 싫어하지는 않는다.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에 가거나 수다를 떨며 사우나에서 죽치거나 여럿이 노는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산은 혼자 가야만 오롯한 충만함을 느끼기 때문에 산에서는 누구와 만나도 쉽게 말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산에서는 침묵만이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과 닿을 수 있으며 그 깊은 곳에서 나오는 독특한 감성으로 세상을 느끼고 되고 그 감성과 느낌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혼자”라는 이미지는 고독을 잘 이겨내는 강인한 인성의 소유자라는 의미와 세속을 벗어난 수행자의 이미지도 포함된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었다. “혼자 있다.” 라는 상태란 정신의학의 측면으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극단적 방어의식, 혹은 분노의 표현이라고 한다. 

 고독과 맞서는 강인한 인성도 세속을 벗어난 수행자도 내게는 전혀 맞지 않는다. 상처 입은 동물이 산의 가장 으슥한 곳에서 조용히 웅크리는 심정인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어의식이며 어떤 분노의 표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내면의 문제의식을 꺼내서 살펴보고 거창한 학술용어를 붙여 분류할 수는 없다. 자신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그는 아주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분석을 하며 인정하고 또는 그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체험하는 일은 매우 큰 성찰이 있어야만 되는 일이다.

 

 가끔은 자신에게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눈치 챈다 해도 재빠르게 덮어버리고 마는데 그것을 들여다보려면 자기파괴와 같은 수준의 고통이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산에 가면, 그것도 혼자. 높고 힘든 산에 오를수록 내면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극한 상황에 처해 인간에게 남아있는 호르몬을 다 썼을때여서 자기의 내면을 동요 없이 바라볼 수 있는지 아닌지 그도 저도 잘 모르겠다. 내가 보았다는 내면조차 사실 본 것 같은 헛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보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만으로도 무엇인가 치유 되었을법한 후련함. 꿈에서 깨고 난후에 그 꿈의 기억은 사라지고 느낌만이 남는 것 같은 상태. 그런 과정을 또한 뭐라고 분류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땀에 젖은 몸으로 스며드는 서늘한 한기에 떨며 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갈참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하늘도 능선도 보이지 않아 얼만큼 올라왔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두 시간 정도 올라왔으니 정상이 보일법도 하련만 표지판이 하나도 없어 답답하다.

 손등에 오슬한 소름이 돋는다. 어느새 안개가 스멀스멀 스며들고 있던 것이다

 능선에 올랐다. 능선 아래로 뿌우연 안개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안개사이로 언뜻 분화구 특유의 깊은 골이 드러난다. 검색한 바에 의하면 분화구 안에 잔디광장이 있고 잔디 광장을 끼고 돌면 그곳이 정상이라고 했다.

 

 능선을 타고 조금 걷자 분화구 속으로 짙은 녹색의 평지가 보인다.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지만 이 겨울에 청청한 잔디가 푸르게 자라고 있다니 보기보다 분화구 안이 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표시가 없어도 이 능선 어디쯤인가가 정상일 것이다.

 

 발밑에 분화구를 내려다보며 나무둥치 옆에 앉아 갖고 온 식빵을 먹었다. 우적우적 씹어 먹는 소리가 참으로 생경스럽다. 분화구 아래에서 떠다니던 안개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오른다. 둘로 갈라졌다가 다시 넷으로 뭉치고 그러다 한 무리가 되더니 다시 낱낱이 저 홀로 흩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들은 위로위로 솟구쳤다. 안개의 한 자락이 스치자 촉촉한 이슬이 맺힌다.

 

 물을 마시고 배낭을 메고 일어섰다. 원형의 분화구 능선을 한바퀴 돌고 하산하면 되는 것이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안개들은 촘촘한 그물처럼 띠를 두르고 바짝 다가섰다. 왼편의 분화구쪽은 비스듬히 경사가 졌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바싹 붙어 걸었다. 사람 하나 간신히 다닐 정도의 길이지만 안개 속에서도 분명히 길은 선명했다. 잡목사이를 헤집고 능선을 타고 걸은지 꽤 되어서야 처음에 올라와서 보게 된 잔디광장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잔디 광장 부근에 내려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길을 놓쳤다는 생각에 다시 뒤돌아 걸으며 천천히 분화구 반대편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큰 나무둥치가 넘어져 가로로 누워있는 곳을 지나면서 이 길이 조금 전에 내가 지나간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뒤로 돌았기 때문일 것이다. 왼쪽에 분화구를 끼로 돌아야 처음 올라온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방황 

 

 다시 몸을 돌려 왼쪽에 분화구를 두고 걸었다. 이제는 아주 천천히 능선 바깥쪽을 꼼꼼이 살피며 걸었다. 조금 전에 뒤돌아섰던 잔디광장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다. 잔디광장을 찾아야 내려가는 길목도 찾을 수 있건만 어찌된 일인지 충분히 되돌아 왔건만 조금 전에 지나간 잔디광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 나무둥치 사이와 잡목사이를 헤집고 능선을 타고 걸어도 내가 올라갔던 처음의 장소, 왼쪽에 잔디광장이 보이는 입구가 나타나지를 않았다. 조금씩 마음이 바빠졌다. 어쨌던 분화구는 원형이니 돌다보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짙은 안개가 잠시 바람결에 날리는 사이에 푸른 잔디광장을 보았다. 이곳을 놓치면 안된다. 

 

 왼쪽에 잔디 광장을 끼고 능선을 한 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어느 부분인가 희미한 산길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성큼 성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새 안개는 사라졌지만 흐릿한 날씨로 산그늘이 어둑신하다. 그렇게 급히 내려가다가 커다란 벼랑바위 앞에서 우뚝 멈추어야 했다. 벼랑 바위 뒤로 앞으로 아무리 살펴도 더 나아갈 길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처음 산위로 올라오면서 한 번도 벼랑바위를 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이 나뭇가지와 돌에 채여 힘들었으니 올라왔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길을 잘 못들은 것이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났다. 털썩 주저앉아 마지막 남은 물을 다 마셔버렸다. 핸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세시가 넘어있었다. 

 

 봄이 가까이 있다해도 겨울산은 5시면 어두워진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핸드폰은 터지지 않았다. 다시 올라가야한다 다시 잔디광장을 찾아 거기서부터 길을 찾아야 된다. 반미치광이처럼 엎어지고 구르며 분화구 앞 능선까지 올라왔다. 능선주변은 여전히 안개로 뒤 덮혀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가만 가만 침착하게 살피자. 올라오자마자 왼쪽에 잔디광장을 발견했었으니까 거기서부터 정말 정신 차리고 하산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능선위로 올라오면 바로 나타날 줄 알았던 잔디광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분명히 잘못 내려간 길이었어도 잔디광장 부근이었거늘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능선을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시 잔디 광장이 보였다. 반가움에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가 올라와서 바보처럼 반대로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거야 아마 긴장해서 방향을 제대로 못 잡은걸거야.

 

 왼쪽에 잔디광장을 두고 이제 심봉사 더듬듯이 더듬어 갔지만 이제는 아까 잘못 내려갔던 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럴 수가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다니. 핸폰도 안 터지고 저녁 해도 넘어가고. 마실 물조차 없다. 머리털이 올올이 곤두서고 손까지 부들부들 떨린다. 아무 곳이나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분화구 반대편 쪽에서 무어라고 떠드는 굵은 음성이 들렸다. 무슨 소리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몇 사람이 주고받는 소리였다.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여보세요 거기요. 잠깐만요. 소리가나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안개 속에서 그들의 소리는 점점 희미해져갔다. 안 되겠다. 내 맞은편 능선인것 같은데 분화구 주위를 돌면서 가다가는 그들을 놓칠지 모른다. 분화구 가운데를 통과해서 올라가자. 망설임 없이 분화구 안으로 돌격하듯이 내려갔다. 안개 때문에 발밑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송곳이 거꾸로 솟아있다 해도 상관없이 뛰었을 것이다.  

 

 분화구 바닥은 의외로 폭신폭신했다. 키 작은 덤불들이 있을 뿐 모난 돌 하나 없어 나는 거침없이 가로 질러 반대편의 능선위로 올라갔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을까. 한달음에 반대편 능선위로 올라왔지만 아무 곳에도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목쉬어 갈라진 내 목소리가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안개 속에서 쩌릉쩌릉 울려 그 소리에 내가 다시 소스라쳐야했다. 그때였다. 분명히 반대편에서 분화구로 내려와 다시 올라왔는데 거기에 잔디광장이 있었던 것이다.내가 무엇에 홀렸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잔디광장 옆에서 분화구를 가로 질러 왔건만 어째서 잔디광장이 보인단 말인가. 그때 엄습한 것은 공포였다. 

 

 순식간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관통했고 무서움이라는 감정에 온몸이 베어지는듯했다. 뒤이어 숨을 쉴 수 없게 심장이 압박되어왔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하는 공포감은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대로 스르르 땅위에 몸을 눕혔다. 어디에선가 “일어나라 일어나.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길을 찾아보라구” 라며 나를 일깨웠지만 눈을 깜박이기조차 힘들었다. 

 

 산에서 길을 잃고 밤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따위의 구체적인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저 막연한, 실재하지 않는 어떤 대상에 의해 억눌리고 위협당하는 듯한. 어떤 객관화된 대상이 내게 폭력을 행사하는 듯 한 생생한 공포였다. 눈을 감았다. 바로 내 코앞에 무서운 그 실체가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아 눈을 뜨지 못했다.

 

 목덜미가 스멀스멀 한 것이 무서운 그것의 한오라기가 닿아 있는 것 같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왔다.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낙엽이 자잘하게 깔려서 안온했지만 바닥으로부터 눅눅한 냉기가 느껴졌다.

 

 

 꿈을 꾸었다. 실제로 잠이 들 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건 분명히 꿈이었고 꿈은 생생했다. 어느 때 내가 살던 집이었을까 밖에서 누군가 나를 재촉하고 마음이 급한데 도무지 모자가 써지지 않는 것이다. 털실로 둥그렇게 짠 모자인데 위에서부터 눌러도 모자는 머리를 감싸지 못하고 옆으로 삐져나왔다. 그냥 푹 덮어쓰면 될 단순한 털모자가 왜그리 써지지를 않았을까. 꿈은 대낮이어서 햇빛이 눈부셨다. 나와 함께 갈 누군가가 바삐 부르는데 한낱 털모자 하나를 쓰지 못해 애를 태우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거울 앞으로 다가가 모자를 머리에 얹고 눌렀다. 거울속에는 열 살 무렵의 내가 있었다.

 

 낙엽 썩는 냄새를 맡으며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이 분명하게 들었다. 전신을 휘감던 공포감을 기억해냈다. 공포였지. 무엇이 무서웠지? 몰라. 그냥 엄청 무서웠어.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 순간 물이 고여 넘치듯 공포감이 제풀에 탁 터져나가는 지점을 만났다. 그 지점에서 어떤 심리적 기제가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려움과 긴장으로 응축되어있던 마음이 제풀에 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번쩍 떴다.

 

 

깨어남

 

 그리고 홀로 부스스 일어났다. 내가 깔고 있던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만이 적막을 울렸다. 심장을 눌렀던 공포감만큼의 해방감. 손발이 오그라들던 긴장감만한 크기의 광활한 마음이 깃들었다. 천천히 배낭을 뒤지자 언젠가 먹다 남긴 사탕이 하나 나왔다. 사탕을 우물거리며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도 무섭지 않다면 언제 내려가도 상관없는 일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 무시무시한 공포감은 얼마나 터무니 없는것 이었으며 또한 그 뒤의 엉뚱한 꿈과 예상을 뒤엎는 안정감은 어째서 비롯되었을까. 어떻게 그런 일들이 순식간에 다 일어날 수가 있을까? 조금씩 묻어오는 어둠 속에서 안개는 미동도 없이 낮게 가라 앉아 허연 자락으로 천지를 음산하게 덮고 있었다.

 

 산을 다 내려왔을 때는 완전한 어둠만이 있었다. 어둠속에서 전설의 고향 같은 불빛이 깜빡였고 그곳은 연흥사였다. 유령처럼 연흥사로 기어들어가 거기서 쓰러졌다.

 

 

 절 방 아랫묵에 혼절하듯 누웠을 때 따뜻한 물을 떠다주던 보살님이 이렇게 말했다.

 

 "하이고 노로오름? 거기가 참 그런디요. 까딱하면 영실쪽으로 간당께. 거기가 말이요오 분화구가 8자 모양으로 생겼당께요. 그리고 항시 안개가 끼어있구만이라. 분화구도 두 개고 잔디광장도 두 군데여 그래서 8자 모양이거든.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자꾸 돈당께, 나도 가믄 헷갈려. 그래도 영실쪽으로 안내려 간 게 천만 다행이요. 그기로 갔으믄 낼. 119서 찾으야지 사람 힘으론 못 찾아내려온당께."

 

 

 8자 모양이라구? 8자? 돌고 돌았단 말이지. 돌고 다시 또 돌고 또 돌았단다. 잠속으로 미끄러지며 웃었다.

 

 공포란 대상에 대한 이미지이다. 내 내면에 존재하는 정서적 장애. 결국 정신의 착오였다. 그것을 똑바로 마주 보는 용기만이 공포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어떠한 좌절 속 에서도 한발씩 전진하는 자세가 바로 용기다. 심장을 누르던 공포와 유년의 애태우던 꿈과 갑자기 사라져 버린 두려움은 서로 무슨 상관이 있을까?

 

 누군가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이유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산행의 본질이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