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는 사춘기

[할매는 사춘기 #5] 마라도 다방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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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5-07 16:47 조회5,8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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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의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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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다방마담

힐빙스토리
슈리슈바

 

 

출처 : 제주특별자치도(www.jeju.go.kr)

 

  “우리나라 남쪽에 막내둥이가 누군지 누군지 너는 아니?”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선생님 풍금에 맞추어 불렀던 노래의 한 소절이다.

 

  나는 그때까지 바다나 섬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막내둥이 섬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것도 형상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설이나 마찬가지였다. 말년에 제주로 이주를 한 뒤 지금은 집 마당에서도 마라도가 보인다. 밤이면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거리는 등대불이 섬 속의 섬을 알린다.

 

  날씨가 좋으면 흰 포말도 선명히 볼 수 있는 마라도는 더 이상 내게 전설이 아니다. 요새는 모슬포 항구에서 뱃길로 삼십분이면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에 닿는다. 마치 조선배추 한포기의 밑 둥을 단칼에 싹둑 자른 것 같은 섬이 망망대해에 뙤똥하니 서있다.

 

  마라도를 막내둥이라고 부르는 게 조금 못마땅하다. 비록 일 년에 두어 차례 태풍이 올 때만 육지 텔레비전에 소개되지만 북쪽 설한풍이 아무리 무서운들 남쪽 태풍에 견줄 수 있을까. 작아도 단단한 마라도는 적 앞에 미리 나가 서서 적의 동태를 알리는 척후병이다.

 

  마라도 앞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의 그 맛을 가장 윗길로 친다. 깊고 물살이 세서 물고기들도 긴장을 하며 살기 때문이다. 마라도에서 바람을 맞으며 가만히 귀 기울이면 섬에 뿌리를 내리거나 서늘한 심해에서 유영하는 것들이나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이렇게 외친다.

 

 

  수게 할망은 마라도 다방마담이다. 바람이 불어 배가 뜨지 않는 한 하루도 빠짐없이 마라도다방으로 출근한다. 아침 첫배를 타고 들어가 포장마차처럼 만든 다방에서 차를 팔다가 저녁 막배로 다시 모슬포로 온다.

 

  사철 바람이 심한 마라도에서 태평양바다를 마주보며 다방 문을 열려면 모자나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보자기 따위로 꽁꽁 싸매고 있어야한다. 양말위에 버선도 덧신고 한여름에도 장갑을 껴야 되는데 할망은 언제나 손톱 발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공들여 칠한다.

 

 

 

 

  화려한술집이나 다방의 진짜 마담들은 킥킥 웃어가며 화류계선배 대접을 해준다. 할망은 그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얼굴을 분가루로 떡칠하고 푸른색 마스카라와 반달모양의 눈썹을 진하게 그리고 머리에 알록달록한 보자기를 뒤집어쓴 할망은 흡사 광대처럼 보인다.

 

  다방마담은 하루 종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흥얼거리는데 유심히 들어보면 '이어도 사나'라는 해녀들의 노동요이다.

 

 

  가사는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곡조는 변함이 없다. 이어도는 마라도 부근에 있다는 환상의 섬이다. 지금도 해녀들은 “이어도 사나”를 부르며 작업을 하는데 유토피아를 꿈꾸며 고단한 노동을 위로 받고 있는 것이다.

 

  첫배가 뜨는 시간이면 마담을 손수레에 태우고 항구로 오는 헙수룩한 남자가 있다. 까치둥지같이 엉클 어진 머리에 휑한 눈동자. 창백한 얼굴로 병색이 짙어 나이를 분간하기 어렵다, 그 사내는 마담이 그날 팔 물건 보따리를 잘 묶어 배에 실어주고 요란한 화장을 한 마담과 헤어진다. “밥 잘 먹고 약 챙겨 먹으라이. 바람 쎈디 나왕 댕기지 말라. 재게 드가라.”

 

  두텁게 분칠 화장을 한 마담과 꺼벙한 사내와의 이별은 연극 가부키의 장면처럼 슬퍼 눈물이 고인다. 저녁 막배가 올 무렵이면 사내는 다시 포구로 마중을 나온다. 장사를 마치고 배에서 내리는 마담의 더께진 화장은 소금기 많은 바닷바람과 사정없이 내려 쪼이는 햇볕에 뒤엉켜서 더럽게 얼룩져있다. 지친 마담을 손수레에 태우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노을 속 풍경은 거룩해보였다.

 

  언젠가 비가 몰아치는 날에는 노파를 업고 갔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웅크리며 등에 매달린 마담을 업은 그 남자에게 한쪽 팔이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출처 : Vanowiki(http://vanowiki.wikispaces.com)

 

 

  아주 오래전 할망을 섬에 버리고 육지로 떠난 남편은 어린 삼남매도 데리고 갔다. 무심하게도 삼남매조차 홀로 사는 어미를 돌아다보지 않았다던가? 할망은 긴 세월이 허허로워 겨우 숨통만 이어갔다.

 

  십여 년 전 아들하나가 사고로 불구가 되고 깊은 속병까지 들어 폐인이 된 것을 할망이 제주로 데려왔단다. “이녁 조식들 허여 주잰허민 벨짓을 허영이라도 멕여사리사주게.”(자식을 위해서라면 별짓을 해서라도 먹여 살려야지.) 수게할망의 신나는 날이 시작되었다. 젊었을 때 소박을 맞은 할망은 읍내의 화류계여자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한다. 할망의 극성스런 화장은 삶에 대한 불타는 의지인 것이다.

 

  빈 한쪽 소매를 덜렁거리며 할망을 업고 가는 처연한 장면에서 언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느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의문은 마라도의 슬픈 전설을 듣고 난후에야 풀렸다.

 

  옛날에 옛적의 전설이야기다. 물길이 세고 바람이 거세어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섬 주변에 해산물이 무지 많았단다. 해녀들이 욕심껏 해산물을 채취하고 모슬포로 돌아오려고 할 때 바람이 불어 배를 띄우기가 어려웠다.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기 몇 날 며칠. 더 이상 마라도에 머무르기 어려운 해녀들은 노한 바다 신 에게 제물을 바치기로 했단다. “저기 바위위에 허연 걸랑이 걷어오너라.”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애기 업개 계집애에게 기저귀를 걷어 오라고 시킨 후 배를 출발시켰다. 애기 업개 계집애는 "나도 데려가 줍서."라고 울부짖었다. 몇 년 후 해녀들은 마라도를 다시 찾아가 애기 업게 계집애의 뼈를 추슬러 묻고 당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애기 업개 당에서 제사를 지낸다. 애기 업개 계집애의 희생을 딛고서야 입도가 가능해진 곳이 마라도였던 것이다. 마라도에 생명이 깃들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또 다른 삶의 희생이 요구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전설이라고 한다.

 

  다방마담으로 분칠을 하며 병든 아들을 살려내는 수게 할망은 마라도에서 사는 생명의 엄숙함을 보여준다. 지금은 이것이 현실이다. 먹고 살기위해 노동하는 직접적인 삶은 차라리 준엄해서 눈물이 고인다. 그러나 이제 고난을 통하여 생명을 이어가는 엄숙한 삶은 서서히 전설이 되어 갈 것이다.

 

  마라도는 막내둥이가 아니다. 마라도는 어리광부리지 않는다.

 

  마라도에 한번 가봐라. 거기서 수게 할망 커피를 한잔 사 먹으며 바람 속 에서 귀 기울여라. 풀들은 바람 부는 쪽으로 드러눕듯 쓰러지고 바람이 지나가면 일제히 일어서며 소리 지를 것이다.

 

 

마라도 수게 할망의 커피 값은 가파도 되고 마라도 된다. 그러나 할망이 주는 커피 잔을 받을 때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을 유심히 보거라. 그때 비로소 마라도가 얼마나 장엄한지 사는 게 얼마나 준열한지 알게 될 것이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다면 그대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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