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는 사춘기

[할매는 사춘기 #7] 내 남편의 아주 은밀한 사진

페이지 정보

작성일14-11-19 15:40 조회5,696회 댓글0건

본문

할매의 사춘기
2944097096_1398068662.5428.jpg
내 남편의 아주 은밀한 사진

힐빙스토리
슈리슈바

 

 

한 남자하고 오래 살다보면 그 남자의 모든 것이 다 내 손안에 있게 된다. 양복이나 속옷, 모자나 혁대 따위도 다 내가 간수하고 찾아 주게 된다. 그렇게 남편의 물건이 다 내 손안에 있지만. 내가 함부로 뒤지고 만지고 헤쳐 놓지 못하는 물건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남편의 지갑이다. 왜 지갑 하나만 마지막 성역처럼 손을 대지 못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젖은 옷을 입으면 억울한 소리를 듣고, 문지방을 밟으면 불쾌한 일이 생기고, 남자 지갑을 만지면 재수가 없다고 늘상 외워 대던 친정어머니의 잔소리가 귀에 박혀서 일까. 요새 돈이 얼마나 있을까, 혹은 어디를 다니며 누구를 만날까 등등이 궁금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평생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뭔가 의심스러울 때, 그럴 때는 슬쩍 열어보고 그의 비밀 같지도 않은 비밀을 혼자 훔쳐보기도 했다.

 

친구를 만난 날 술이 취해 들어오면 지갑 속에서 계산서를 찾아낼 수가 있다. 다음날 남편은 친구가 술을 사서 미안하다며 내게 능구렁이 같은 수작을 부리지만 그럴 때 나는 꾹 참아야 한다.  

 

아주 가끔씩 지갑을 뒤져 남편의 단골 술집이 어느 집이고 회사로 찾아온 친구에게 불고기를 사주었는지 곰탕을 사주었는지를 확인하지만 평생 그것을 아는 척 해 볼 수는 없었다.

 

남편은 장지갑을 쓰지 않는다. 오랫동안 군대 생활을 하면서 전투복 윗 포켓에 들어가는 반지갑을 사용하다보니 나중에 양복을 입을 일이 생겨도 장지갑을 쓰지 않았다. 지금도 손때 묻어 나달나달한 반지갑을 뒷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누구에게서 근사한 장지갑을 선물을 받아도 몇 십 년을 쓰던 반지갑을 절대로 버리는 일이 없다. 반지갑에는 많은 돈이나 물건을 넣기가 어렵다. 고작해야 카드 몇 개나 신분증 현금 십 여 만원을 넣으면 불룩해지기 때문이다.  

 

남편이 젊었을 때, 결혼하기 전 남편의 지갑을 열어 본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엉뚱한 의심이나 호기심도 없이 무심코 열어 본 것 같다.

 

반지갑 신분증을 넣는 코너에 자기 사진이 들어있었다.

 

정복과 정모를 쓰고 반듯하게 찍은 반명함판 사진이었다. 눈빛은 형형하고 입은 한일자로 굳게 닫혔으며 어릿한 소년이 지어낸 위엄이 가득했다.

 

 

 

200991141139.jpg

 

 

왜 자기 사진을 자기 지갑에 넣고 다녔을까. 젊어서는 누구라도 나르시스적인 면이 있어서 였을 것이다.

 

나와 연애를 해서 사랑하는 그이가 되었을 때 부산 해운대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의 지갑 속 자기 사진이 내 사진으로 교체되었다.

 

애인의 지갑 속에 있던 내 사진을 살짝 훔쳐보며 어쩌면 내 사랑을 확인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연애할 때보던 그 사진을 넣고 다녔다.

 

 

200991141139[1].jpg

 

 

결혼한 후에 찍은 사진으로 바꾸어 놓으라고 하고 싶지만 지갑을 열어 본 것이 들통 날까 두려워 내 버려두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면 피차 내가 혹시 피리를 너무 비싸게 산게 아닐까 하고 막연한 후회가 안개처럼 스멀거리기도 한다. 남편도 신혼이라는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인생의 쓴맛을 알았을 테니 아내의 사진을 넣고 다닐만한 애틋한 마음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며 아이 낳고 살림하고 사느라 남편의 지갑에 무슨 사진을 넣고 다니는가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 아예 지갑 속 사진에 대해 잊고 살았다.

 

부부가 되어 살다보면 뭐 새삼스럽게 알콩달콩 한 것이 없어 남편 지갑에 있는 사진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돈이 얼마나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는 남편의 지갑조차 관심이 없었다. 오래 살아 남편의 일 거수 일투족을 알게 되니 남편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을 감출 리도 없고 감추어 봤자 별거 아니라는 무관심이 많아서였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사진 따위는 넣고 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은 자기의 모든 에너지를 직장에만 쏟고 있었으므로 집에서는 밥이 끓는지 죽이 끓는지 아예 모르쇠였다. 깨알같이 적은 회의 기록이며 거래처 사람들 전화 번호 혹은 일정 따위를 적은 종이 조각이 지갑의 갈피갈피마다 끼워져 있었던 것 같다.

 

 

딸들이 자라 처녀티가 제법 나기 시작했다.

 

그때쯤 우리도 우리가 이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결코 미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키웠는데 처녀꼴이 배자 우리 눈에는 그 딸이 어떤 여배우보다 예뻐 보였다.

 

딸이 자라 여성으로 모양을 갖출 때 아버지로서 남자가 받는 충격이 더 많은 것 같다. 마누라인 내게는 온갖 치사한 모양을 다 보이지만 딸들 앞에서는 아주 신사적이고 후덕한 아버지로 처신했다. 딸들이 학교 때문에 집을 떠나자 남편은 옛날 연애할 때 나와 헤어지던 그 모습보다 더 슬프게 아쉬워 했다.

 

그때쯤부터 남편의 지갑에는 다 자란 두 딸의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딸들은 과년해서야 시집을 갔는데 그 뒤로도 남편은 풋풋한 청춘의 딸들 사진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20099114540.jpg

 

 

딸들의 사진은 지갑 속에서 구겨지고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각자 제 자식을 낳아 이미 삼십을 더 넘겼어도 남편은 그때 그 사진만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손녀딸들이 태어나 신생아 때부터 백일 돐 사진은 물론이고 조금씩 자라며 이쁜 짓을 할 때 마다 찍은 사진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남편도 나도 집안 구석구석 모퉁이 갈피 할 것 없이 어린 손녀의 앙증맞은 사진으로 도배를 하다 싶이 걸고 붙였다. 우리들의 관심과 기쁨은 오로지 어린 손녀딸에게만 있게 된 것이다.

 

 

남편의 지갑을 본지 꽤 오래 되었다.

 

딸들이 시집을 가기 훨씬 전에 그 애 들의 사진을 지갑에서 본 후로 오랫동안 관심이 없어 열어보지 않았었다. 바지를 세탁하려고 새 바지에 지갑을 넣어주다 어제 무심코 지갑을 펼쳐 보았다. 지갑 속에 어린 손녀들의 귀여운 사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거기에는, 거기에는 미쳐 생각지도 못한 사진이들어있었다.

 

남편의 어머니사진 이었다.

 

 

200991141139[2].jpg

 

 

누렇게 변색된 낡은 사진 한 장.

 

낡아 볼품없이 쭈그러들고 이제 돈도 별로 없는 할아버지 지갑 안에 그 옛날 아주 옛날에 찍었을 당신 어머니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 시대 어머니들이 다 그랬듯이 사진 한 장 변변히 남아 있기 어려웠을 텐데 어디서 새삼스럽게 구해서 지갑 갈피에 간직하고 있었을까.

 

한복을 입고 쪽머리를 올린 구식 어머니 사진을 넣은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며 명치가 저릿해졌다. 젊었을 때 우리가 사랑하고 가슴 벅차던 그 모든 것들이 늙으면 조금씩 소멸되어간다. 남편은 이제 늙어 젊은 날의 열광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모성으로 회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지갑에서 농염 짙은 도색사진이라도 나왔더라면 분해하고 더러워 하면서도 아직은 치열한 남자여서 안도했을 것이다. 손녀딸을 그리 귀여워하면서도 아기들 사진을 넣지 않고 이십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란 그가 너무 일찍 늙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한세상을 다 살고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람의 한 평생이 훠이 훠이 다 돌고 나니 사실 몇 장의 사진으로나 남지 않는가. 그 몇 장의 사진 안에 삶의 모든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이 다 들어있다.

 

 

언젠가 훗날,

내 딸들은,

자기 부모님이 제주에서 살 때를 회상하며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겠지.

산다는 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몇 장의 사진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