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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인 라이프 #1] 중년 부부의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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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2-28 22:20 조회6,8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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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부부의 침대

힐빙스토리
뚜벅이

 

 

 

 부부의 침대가 난로처럼 뜨거운 적도 있었고 얼음처럼 차가운 적도 있었다. 당연히 신혼의 시기에는 싱글침대라 해도 좁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침대는 뜨거웠고 그 시기가 지나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서로 등을 돌린 채 묘한 신경전으로 침대는 냉랭하게 식어갔다.

 

 심지어 부부의 침대에 한 사람의 체온만 있던 시기도 있었다. 아이를 낳고 서로의 생활리듬이 달라서, 늦게 퇴근한 후 육아에 지쳐버린 아내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 나는 거실이나 서재에 이부자리를 깔기도 했던 것이다.

 

 부부가 중년이 되었을 때, 침대는 특별히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침대는 그저 지친 하루를 휴식으로 마감하는 익숙하고 오래된 가구일 뿐이었다. 열정이 떠나간 자리를 씁쓸한 유머가 대신했다.

 

 아내의 샤워소리에 공연히 쪼그라지고 공포감을 느낀다는 세상 남자들의 하소연을 부부는 침대 위에서 웃으며 나누었다. 위층에 이사 온 신혼부부가 이번에 또 침대를 새로 들여놨다는 말을 낄낄거리며 함께했다. 그러면서도 부부는 묘한 한숨을 각자의 목구멍으로 다시 밀어 넣고 있었다는 것을 오래된 침대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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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방을 쓴다는 것이 더 이상 흉이 되지 않을 정도로 꽤 많은 부부가 ‘부부동침’의 절대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린 세태에, 비록 열정 없이 식어버린 침대지만 여전히 같은 침대를 쓰는 이유를 누군가 물어온다면 나는 나이 들면서 찾아오는 새벽의 고독을 혼자서 맞이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대답할 것 같다.

 

 일과 사람과의 관계 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밤이면 악몽은 불청객처럼 찾아오고 몸을 뒤흔들며 놈을 쫒아낸 후에도 여전히 불안감에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새벽이면 옆에서 도르랑도르랑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아내의 무심함이 오히려 고마울 정도로 안도감을 준다. 방금 전의 나쁜 꿈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생명체의 편안함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나는 꿈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개그콘서트로 일요일을 편안하게 마감하고 잠이 든 월요일 새벽,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미래에의 불안감에 너무 일찍 눈을 떠버린 그런 날도 마찬가지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고, 한발을 잘 못 디디면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모두 불행해질 수 있으며, 세상의 불행이 모두 나에게 찾아올 것 같은 근거 없는 불안감이 사방의 벽에서 나를 조여 온다.

 

 그때, 따뜻한 잠결의 손길로 뒤척이는 남편의 손을 잡아주는 아내의 온기는 그 짧은 우울을 일거에 쫒아 내주는 포근하지만 강력한 처방이다. 그 손에는 ‘모든 것은 다 잘 될 거야’ 라는 무언의 위로가 담겨있어, 나는 다시 아이처럼 잠에 빠져든다.

 

 지나온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느껴지고, 그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늙게 될 것이라는 실존의 공포도 어느 날에는 침대로 기어들어온다. 그 괴물이 슬쩍 내 몸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무력하게 늙다가 속절없는 무용(無用)함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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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는 여전히 기운 있게 일을 하고, 저녁에는 여전히 호쾌하게 술을 마시며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는 아직 팔팔한 청춘이라고 자위하던 활력과 객기는 그 새벽에 흔적조차 찾을 수없다.

 

 그렇게 삶의 숙명 앞에서 홀로 떨고 있을 때, 아내는 나를 가볍게 포옹해주고 등을 두드려줌으로써 몇 분의 지옥에서 나를 구원해준다.

 

물론 새벽의 고독이 밤이면 밤마다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고작 일 년에 한 두 차례 겪는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누군가와 한 침대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내도 그럴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잠자던 아내가 아이처럼 내 품으로 파고들거나, 내 손을 잡으려할 때는 나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그녀를 품어주고 다독거려준다.

 

 젊은 부부의 침대는 중년 부부의 침대가 가진 정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젊을 때 나의 침대도 중년의 침대가 가진 서정을 예측조차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가 맞이하게 될 노년의 침대는 과연 어떤 공간으로 우리 부부를 맞이할 것인가? 침구를 정리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주름과, 그 뒤로 비친 침대를 바라보며 한동안 공상에 빠졌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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