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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인 라이프 #9] 좋은 아버지 되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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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11-21 16:31 조회4,5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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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버지 되기의 어려움

힐빙스토리
뚜벅이

 

 

 

<좋은 아버지 되기의 어려움>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이뻐해주셔서 /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 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초등학교 동시’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을 달군 글이다. 그것이 정말 사실의 글인지 혹은 조작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어찌됐든 많은 이들이 피식 웃으면서도 고개를 끄떡이는 반응을 보면 현재의 세태를 잘 풍자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물론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 보다 훨씬 전에도 아버지들은 늘 바빴고,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 속에서 소외되었고,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불만을 키우고 아버지는 그 불만만큼 외로움을 속으로 늘려왔었다. 그러므로 아빠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요즘 아이의 의문이 개봉영화처럼 뿅하고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인터넷 검색 하나면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는 세상에  ‘좋은 아빠’ 되는 것은 확실히 더 어려워져 보인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지들이 ‘바빠서’ 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나 ‘바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변하는 만큼 아이들도 숨 가쁘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엑스 세대라는 말을 들으며 신인류 대우를 받던 남자들이 지금은 유치원 학부모가 되었다.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이후 386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냈던 남자들이 지금은 중고등학생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가부장적 남성성에 문제점을 고발하고, 양성 평등을 주장했던 세대들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주말이면 시간을 내서 아이와 놀아주고, 연말연시는 꼭 가족과 함께 하고, 청소와 설거지 등을 도와주는 것을 ‘ 좋은 아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고, 만일 시간이 너무 없어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꽤 미안해할 정도의 의식의 진화를 이룬 세대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와 <전원일기>의 김회장을 한국의 아버지라고 여기는 환경 속에서 자라왔다. 그들의 집에서도 아버지는 집안의 왕이거나 폭력적이거나 또는 자기 감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근엄한 존재였다. 때때로 자신들이 말썽을 필 때도, ‘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라고 폼나는 대범함을 보이거나 그 말썽이 심하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정도의 무서운 매를 드는 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아이와의 단절이요, 덤으로 얻는 것은 문제 많은 아버지라는 꼬리표다.

 

  몇 달 전 가족 세우기(Family Constellation)라는 힐링 프로그램 워크숍에 혼자 참석한 40대 후반의 아버지는 게임중독에 빠진 중학생 아들과의 갈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고, 아이에게도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이가 학교를 안가고 밤낮으로 게임만 하는 겁니다. 처음에 아내와는 달리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요. 사내놈들은 다 그렇게 크는 것이라 여겼으니까요. 정도가 심하다 싶을 때 훈계를 했고, 그게 먹히지 않았을 때 아이가 오줌을 쌀 정도로 매를 들었습니다. 저도 아버지에게 많이 맞고 자랐으니까, 이 정도면 아이가 아버지 무서운 줄 알고 정신을 차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아이는 더 반항을 하고, 저와는 대화를 끊고 가출까지 해서 아예 피씨 방에서 사는거에요.”

 

  그러면서 그는 이 시대의 아버지로 산다는 것의 외로움을 본격적으로 토로했다.

 

  “ 아내는 제 방식대로 하면 아이가 비행청소년이 된다고 저를 탓했고 부부 상담을 받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죠. 잘못된 것은 아들놈이고, 집안에서 애 교육 못시킨 마누라인데 제가 왜 상담을 받습니까? 제 잘못이라면 밖에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어요. 그래도 집안이 거의 파탄이 날 지경이니 결국 상담소를 따라갔죠. 처음 상담을 받으면서도, 아버지가 변해야 아이가 변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상담실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저항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의식도 있을만큼 있고 배울만큼 배운 내가 왜 죄인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 역할을 무의식 속에 각인시켰고 아버지의 습성을 자연스럽게 상속받은 이들이지만 아버지의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을 때 게임 중독의 아버지는 너무나 막막했고 당혹스러웠으며 억울했고 고독했다고 말했다. 거기에 자신의 아내가 “당신이 이런 식으로 하면 아이는 더 탈선해”라며 나무랄 때, 그는 심한 고립감도 느꼈다고 했다.

 

  이 바쁜 변화의 시대에 먹고 살랴, 가랑이가 찢어지더라도 ‘좋은 아빠’로 변신하랴 지금의 아버지들은 이래저래 고단하다. 대발이 아버지 이순재가 야동순재로 변하는 그 20년의 변화를 단숨에 겪어야 하는 요즘의 아버지들은 강박의 속앓이를 저마다 앓는다. 그러므로 엄마들아, 남편이 너무 아이에게 느긋하다거나, 옛날 방식만 고집한다고 너무 탓하지 마시라. 아빠들도 눈 있고 귀있는데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왜 모르겠는가. 그저 찬찬히, 조곤조곤, 엄마가 생각하는 이 시대의 ‘좋은 아빠’를 말해주고, 아빠의 변화를 기다려주면 되는 것이다. ‘ 이 사람도 자기 아버지를 통해 껴입혀진 껍질을 벗느라 참 힘들겠구나’ 라며 연민을 가져주면 그 보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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