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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인 라이프 #3] 칭찬에 살고 지적에 죽는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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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3-28 12:43 조회4,9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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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에 살고 지적에 죽는 남자들

힐빙스토리
뚜벅이

 

 

  

갑자기 찾아온 원형 탈모증으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내 눈에는 남자들의 머리만 보였다. 이전에는 남의 머리카락이 많던 적던, 노랗던 빨갛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나 내 머리의 참화가 시작되고 나니 전철 안에서도 거래처 사람과의 미팅에서도 내 관심은 온통 타인의 머리였던 것이다. ' 저 사람도 숱이 참 없구나, 쯔쯧' ' 이이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다. 저 무성함을 보라지' 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길을 걸을 때도 ‘ 헤어클리닉’ ‘탈모해결’ ‘가발’ 과 같은 간판도 보이던 때이기도 했다.
 
당시 어떤 모임을 일주일에 한번씩 하고 있었는데 회원 중 한 분 이었던 40대 교수도 나의 레이더를 피하지 못했다. 볼펜이 톡하고 떨어지자 그 이가 고개를 숙였고, 어머나 세상에, 그의 정수리가 뻥하니 뚫려있는 것을 나는 보고 만 것이다. 묘한 동료의식과 안도감(?)을 느끼며 뒤풀이 모임에서 그의 손을 꼭 잡고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겠냐고 소곤거리며 위로 했다. 그랬더니 그는 양복에 묻는 먼지를 털듯, 대수롭지 않게 자기 머리를 툭툭 두드리면서, " 아, 이거요? 괜찮아요. 머리 빠지는 게 뭐 대수에요? " 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대범함에 화들짝 놀란 나는 이 양반이 허세를 부리나 싶었으나, 이어진 다음 말을 들으면서 그것이 허풍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 우리 와이프는 내 두상이 예뻐서 머리가 빠지니 더 귀엽대요. 하하 ."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때, 너는 하나의 몸짓에서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노래처럼 그의 대머리는 그의 아내의 한 마디로 콤플렉스 덩어리에서 오히려 자랑스러운 미용의 머리가 된 것이다.
 
 
 
 
아내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다 큰 사내들에게 지진과 같은 영향을 주는 사례를 나는 꽤 많이 목격했다. 신혼 때 아내가 침실에서 던진, " 어머, 자기 엉덩이는 어떻게 여자인 나보다 더 예뻐?" 라는 말 한마디를 DNA 깊숙이 각인 시킨 채, 샤워를 하고 나면 흐뭇한 표정으로 거울에 뒤태를 비춰보며 로션을 토닥토닥 바르는 사우나의 남자들. 옆모습이 괜찮다는 젊은 시절 아내의 말에, 누가 사진기만 들이대면 죽으라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던 남자들. 정작 그 말을 한 당사자는 기억도 못하는데 목소리 좋다는 아내의 말에 전화기 앞에서는 유독 자신감을 보이는 남자들.
 
물론 자기 말 듣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인간이라 하니, 사소한 칭찬 한마디에 아이처럼 흥분하는 것이 어디 남자뿐이겠는가. 쇼핑 실패로 옷장에 처박아놨던 원피스를,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입고 나왔더니 애인이 여신 같다고 극찬 했다면 아마도 그 다음날부터 그녀의 옷장에서 그 원피스는 최고의 보물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타인으로부터 칭찬과 찬양을 거의 들어보지 못한 (특히 외모에 있어서) 남자들은 (장동건이나 원빈이 아닌 이상) 누군가 어떤 특정 부위를 해부학적으로 칭찬하고 분위기 등을 시적으로 띄워줄 때  그 생소하고 특별한 경험의 파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 줄을 놓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여자의 사소한 말에 남자는 총 맞은 것처럼 엄청난 실망감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친한 사이에도 말하기 어려운 것을, 부부라는 이름으로 툭툭 말해버리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같이 밥을 먹은 이성 동료의 이에 고춧가루가 끼거나, 실수로 코에서 이물질이 달랑거리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 당신 이빨에 불났네요” 라는 식으로 직설  화법을 구사하기는 참 어렵다. 그렇다고 “ 미스김씨, 거울 좀 보고 오세요” 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대개의 경우는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기대하며 그냥 못본 척한다. 그것이 예의고 매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부사이는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이런 매너를 곧잘 잊는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남자의 외형적 드러남에 대한 여자의 말 한마디가 배우자에게 큰 모욕과 상실감을 준다.
 
모처럼 둘이 오붓하게 차 한 잔 마시며 정담을 나누려 했더니, " 당신 오늘 이 안 닦았어? 왜 이리 입에서 냄새가 나?" 라는 말에 듣는 남편은 ‘빡!’ 돈다. 맛있게 함께 식사를 하는데, "자기, 왜 이리 짭짭거리면서 먹어? 국도 후루룩 거리면서 먹지 좀 마" 라는 말에 듣는 남편은 ‘훅’ 간다. 입 냄새가 나지 않음을 항변하고 싶다거나, 짭짭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시원하게 항의하지 못해 억울하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가만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내 편이어야 할 이 사람만 계속 지적을 하지?”에 대한 원망에 ‘빡!’ 돌고, “이제는 나의 좋음보다는 나의 나쁨만 눈에 보이는구나” 라는 서운함에 ‘훅’ 가는 것이다.
 
아내의 칭찬이 대머리를 자부심으로 만들고, 오리 궁둥이를 섹시 엉덩이로 만들어주었듯이 아내가 던지는 무심한 지적은 조인성의 엉덩이도 정준하 궁둥이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여자들은 기억해 주면 좋겠다. 여자가 현생에서 공덕을 쌓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당신은 3번과 4번 사이 척추 뼈가 정말 예뻐" 라거나 "새끼발가락이 어쩌면 이렇게 남자답게 생겼을까, 뒈박" 이라거나 "웃을 때 눈 밑의 주름이 퍼그처럼 귀여워"  따위의 말도 안 되는 립싱크라는 것을 세상의 여자들이 알랑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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