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인 라이프

[힐링 인 라이프 #5]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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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5-08 19:45 조회4,7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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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2월 예루살렘에서 세계인이 주목하는 재판이 열린다. 피고인은 독일의 나치스 친위대 장교였으며 유대인을 인간 도살장으로 내몰며 나치의 대량학살의 괴물로 불리던 아이히만. 그리고 이 재판 과정을 전세계에 적나라하게 보고할 의무를 띄고 한나 아렌트라는 정치분석가가 현장에 파견된다.

 

그녀 역시 유대인이었으며 반나치 운동의 전력도 있고 수용소 생활까지 했으니 세계인들은 그녀가 아이히만을 철저하고 적나라하게 고발해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타전되는 보고서는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그녀는 사람들이 인간 도살자라고 부르는 아이히만에게서는 악마의 징후를 발견할 수 없으며 우리의 이웃에서 만나는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재판을 성사시켰거나, 나치의 직간접적 피해를 받았거나, 유대인 학살을 전인류적 범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대단히 실망하고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는 배신자라는 비난까지 받으며 심지어 친한 친구로부터 절교까지 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그러나 법정의 진술대에 선 아렌트에 대한 그녀의 분석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본질은 이른바 ‘악의 평범성’이라는 부분이 아니다. 그녀는 ‘철저한 무사유 Sheer Thughkessness'라는 용어를 쓰며 아렌트가 저지른 학살의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한다. 그는 비록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모습으로 자기 일가를 이루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이 미래에 끼칠 영향을 예측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는 무사유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할 수 없음은 그의 생각할 수 없음, 즉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음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 그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에 대한 분석의 결론이다. 우리도 주변에서 많이 본다. 극도로 화가 난 사람을 우리는 뚜껑이 열렸다고 하는데, 이들은 물불을 안가리며 폭언을 하고 폭행을 휘두른다. 또는 주폭이라고 불리는 상습적 음주 폭행자들도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경찰서에 와서 머리를 숙이고 후회하지만 대부분이 말하는 것은, “ 제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이해가 안되요” 라는 것이다.

 

마음챙김(Mindfullness)이라는 힐링 용어가 있다. 내 뜻과 관계없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버릇없는 강아지처럼 천방지축으로 음직이는 내 마음을 내가 잘 챙기는 것이다. 지금 머무는 곳에서 내 마음이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내 감정이 어떠한지를 특별한 주의집중의 방법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바라봄이 바로 명상의 기본이며 자기 힐링의 핵심이다. 자기를 거리를 두고 바라본 후에, 자기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확장해가면서 바라보는 것, 이것이 타자 중심적 삶의 마음챙김이다.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향해 괴물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으나 인간과 괴물의 차이는 사유하는가, 사유하지 않는가, 내 행위의 파장을 생각하는가,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모르는가의 구분일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는 과연 괴물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아니면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인지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일이다. 다들 긍정의 답변을 스스로에게 내리기를 기대하며,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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