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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인 라이프 #7]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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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4-06-13 17:21 조회4,7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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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

힐빙스토리
뚜벅이

 

<낙타중년, 사자중년, 아이중년>

 

  모 공중파 토크 방송에 출연해 중년남성 갱년기를 주제로 짧은 강연을 했더니 패널로 참가한 중년 연기자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 중년을 행복하게 맞이하라고 하는데 자고 나면 주름 생겨있고, 거울 보면 늙는 모습 확인해야 하는 것이 진짜 싫어요.”

 

  당연히 싫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세월이 주는 노화라는 선물을 버선발로 뛰어가 맞이하는 사람은 없다.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또 다른 패널은 이렇게 말했다. “ 남성 갱년기에는 비아그라가 특효 아니에요?”. 그것도 맞다. 남자 구실 못하면 세상은 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도 부지기수다. 수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중년 남성 기살리기> 미풍에 이러 저리 소환당하면서 가만히 눈동냥을 해보니 중년에 임하는 남성들의 자세는 백인백색 천차만별이다. 위의 연예인처럼 외모와 성(性)적 능력에 예민한 사람도 있고, ‘가는 세월 누가 막으리요’라며 무덤덤한 이도 있고, ‘중년이고 뭐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그런거 고민할 시간 있으면 한 푼이라도 노후 준비 더 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시인은 시인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나>와 같은 명시를 남긴 김광규 시인은 <어떤 고백>에서 중년이 된 남자의 실존적 고민을 고백 형식으로 털어놓는다. “ 나는 몰지각한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여자가 되고 싶었으니 말이다” 로 시작된 이 산문시는 그 이유가 단지 매일 수염을 깎기가 귀찮아서도, 군대를 가야하기 때문도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바로 “ 아무나 사랑해도 안 되고, 아무나 싫어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이기지 못하면 지는 수밖에 없는 남자 노릇이 싫어졌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욕망을 거세당한 체 살아야 남자답다는 소리를 들었고, 센 척, 강한 척을 해야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인은 중년이 돼서야 그것이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는지를 자각한다. 소원대로 여자가 되었지만 숱한 남자와 연애하다 방탕한 여자라며 욕을 먹고, 결국 사람 아닌 개가 되었지만 보신탕집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짖지도 못하고 숨어 사는 신세로 이 시는 마무리된다.

 

  시인은 블랙코미디 같은 희비극의 감정으로 고뇌하는 중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무덤 속에서 분석 심리학자 융Carl Gustav Jung이 그 시를 들었다면 벌떡 일어나 시인을 꼭 안아주었을 것이다. 융은 중년의 시기를, 자기 개성화 또는 정체성을 찾는 때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시인이 남자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개로 중년의 자기 정체성 변신을 시도할 때, 그보다 앞서 서양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그 유명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자기 변형을 강조했다. 낙타에서 사자로, 사자에서 어린 아이로의 변신이다. 비록 니체는 중년이라는 특정한 시기를 한정해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중년을 주인공으로, 김광규의 시와 대비해서 읽으면 해석의 치감이 더 살아난다.

 

   “ 아무나 사랑해도 안 되고, 아무나 싫어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이기지 못하면 지는 수밖에 없는 남자 노릇”이 바로 낙타의 삶이다. 마치 무거운 짐을 모두 짊어지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낙타처럼 남자들도 “남자 노릇”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니체는 낙타를 사자로 만들어버리고 사자는 사막의 주인이 된다. 낙타의 삶이 구속이라면 사자의 삶은 자유다. 누구도 사자에게 명령하지 않으며, 세상은 사자에게 최적화된다. 위보다는 아래가 더 많은 위치, 속칭 말빨이 먹히는 때가 중년의 시기다. 목소리는 거침없고, 영향력도 있고, 눈치 보는 부하들도 많다. 사람에게 중년의 시기는 사자의 시기다. 그러나 니체는 진화적 인간 변형의 최종 단계를 사자가 아닌 어린 아이로 설정했다. 어린 아이는 어떠한가?  그들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순진무구하고 거룩한 긍정성을 가지고 있다. 호기심이 생기면 시도하고 자기 욕망에 솔직하며 기쁨과 슬픔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다. 니체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라고 말한 것이다.

 

  느닷없는 철학이야기 하느라 내 입이 구안와사가 걸릴 지경이다. 한 줄로 정리한다면 건강하고 폼 나는 중년은 육체의 비아그라가 아니라 정신의 비아그라도 함께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비아그라의 주성분은 물음표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시인처럼, 니체의 아이처럼 회의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철학책과 인문학 책과도 친해져야 한다. 삶의 연륜이 생긴 중년의 시기에 인문학은 생각보다 쉽게 친구가 된다. 물음이 고차원적이 아니어도 된다.  자기가 어떤 옷을 입고 싶고,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 욕망이 답을 한다면 주변 의식하지 않고 한번은 사고 쳐봐야 한다. 그 사고가 딱 자기 적성에 맞다면 그 사고는 계속 돼야 한다. 다 늙어 주책이라구? 33년 만에 더 빛나는 목소리로 돌아온 예순 세 살 김추자 님의 앨범 제목은 ‘ 너무 늦지 않았어요 It's Not Too Late’ 다. 애늙은이 흉내 내지 말라고 호통 치는 누이의 꿀밤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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